최저임금 인상 2년 후폭풍
18일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 유모 씨(73)는 혹여나 일자리를 잃게 될까 걱정하고 있었다. 최저임금 문제 때문이다. 유 씨는 이 아파트에서 2016년 1월부터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사이 최저임금은 2017년 대비 올해 29.1% 올랐다.
하지만 유 씨의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의 상승률은 그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2017년 168만 원을 받던 유 씨가 올해 받는 월급은 181만 원. 2년 동안 7.7% 오른 것이다. 이는 근무시간 중 휴게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2017년 9시간 30분이었던 휴게시간은 올해 10시간 30분이 됐다. 최저임금이 오르자 매년 30분씩 휴게시간이 증가했다. 유 씨는 “적당한 선에서 급여를 받는 게 좋지, 이렇게 계속 (최저임금) 인상되면 인원을 줄일까 봐 불안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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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대상 대부분의 아파트에선 휴게시간을 늘려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임금 인상 폭을 상쇄했다. 하지만 정작 경비원들의 ‘체감 근무시간’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휴게시간을 경비초소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아 주민들이 수시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사실상 근무시간인 셈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고모 씨(63)는 “휴게시간엔 주민들 상대하지 말라고 지침이 왔지만 말이 안 된다”면서 “막말로 휴게시간에 불나면 경비원은 가만히 있어도 되느냐”고 말했다.
휴게시간이 근무시간이라는 법원의 판결도 있다. 대법원은 2017년 12월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들이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소송에서 경비초소에서 있어야 하고, 초소의 불을 켜고 있어야 한다면 휴게시간은 근무시간이라는 취지로 판단을 했다.
근무시간을 줄이면서 인력도 같이 줄이는 아파트의 경비원들은 더 불안하다. 서울 서초구의 A아파트는 2017년 경비인력을 16명에서 6명으로 대거 줄였다. 2018년이 시작되면서는 근무시간이 기존 하루 24시간에서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9월엔 1명을 추가로 해고했다. 올핸 여기에 퇴근시간을 1시간 앞당겼다.
주민들은 휴게시간 증가에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주민 60대 여성 A 씨는 “경비원들 근무시간을 줄이는 바람에 택배 받아줄 사람도 부족하고 불편해 죽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아파트 입주민 김모 씨(30·여)는 “샤워를 해야 하는데 뜨거운 물이 안 나와 관리사무소로 갔더니 근무시간이 아니라고 고쳐줄 수 없다고 해 당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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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관리비가 오르면 주민 1, 2명은 반드시 항의를 한다”고 했다. 아파트 경비원 성모 씨(65)는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해도 본인들이 결정한 거라 우리로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심규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