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도입 추진 ‘협력이익공유제’ 中企 투자 늘리고 경쟁력 개선 효과 다만 ‘갑을 관계’ 조정하지 않으면 이익은 모두 대기업이 챙겨갈 것 中企의 거래처 다변화 지원하고 은행 등 금융부문이 대기업 견제해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시장 실패’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하도급 거래에서 자주 발견된다. 중소기업이 특정 대기업에 많이 의존할수록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볼펜 같은 범용제품을 납품하는 경우엔 특정 대기업에 의존할 일이 적고 단가도 시세에 따라 정해진다. 하지만 자동차나 휴대전화 부품처럼 발주처에 특화된 제품을 납품하는 경우엔 당사자 간 일대일 역학관계가 단가를 좌우한다.
이때 중소기업은 불리한 위치에 서기 쉽다. 이들은 특정 대기업의 요구에 맞춰 설비투자를 하는데, 일단 투자가 이뤄지고 나면 상황을 되돌릴 수 없어 ‘을’의 지위에 놓인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큰돈을 들여 투자를 해놨는데 대기업이 부품을 계속 사주지 않으면 그간의 투자가 무용지물이 되니 ‘갑’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를 홀드업(hold-up), 즉 ‘꼼짝 마’ 또는 ‘손들어’라고 하는데, 거래 상대방이 꼼짝 못 하게 됐을 때 마음껏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런 일에 대비해 설비투자 전에 계약서를 꼼꼼히 작성하고 납품단가도 투자 위험을 반영해 충분히 높여두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구두계약이나 애매한 계약이 빈번하고, 중도에 납품단가가 깎이기도 한다. 계약이 무시됐을 땐 소송비용도 크고 충분한 배상을 받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거래가 끊기는 건 치명적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올리버 윌리엄슨은 미래 시장 상황의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 간 장기계약은 애초에 합리성이 제약된 불완전계약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사적 자치에 따른 계약이 약자에게 위험과 손실을 떠넘기는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불리한 상황이 예견되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이는 대기업에도 좋지 않다. 장기적으로 좋은 부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양자가 함께 파이를 더 키우고 설비투자와 혁신투자를 늘릴 수 있었음에도 단기이익 때문에 결국 상호 불이익의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수익성, 설비투자, 연구개발이 대기업에 비해 크게 부진하고 제조업 경쟁력도 떨어져 내수와 고용에도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협력이익공유제는 대·중소기업이 협력사업을 해 그 성과를 자율계약으로 나눌 경우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다. 애초에 위험과 손실을 떠안기 쉬운 불완전계약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이 위험을 감수하고 협력할 경우 그 대가를 사후적으로 챙겨 준다고 하면, 중소기업이 혁신투자를 늘리고 대기업도 결국 이익을 보는 상생을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협력이익공유’를 위한 자율계약 자체도 불완전할 수 있기 때문에 당사자 간 힘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조치가 병행돼야 효과가 있을 것이다. 갑을 관계가 그대로라면 이익을 나눈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다른 조건을 조정해 갑이 혜택의 대부분을 흡수하는 식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간 협상력 격차를 줄이려면 중소기업의 국내외 거래처 다변화를 지원하고 약자에게 불리한 전속거래 관행을 시정해 시장경쟁의 힘이 작용하게 해야 한다. 또 전체 파이를 키우는 데 이해관계가 걸린 경제 주체, 예컨대 은행 등 금융부문이, 단기이익에만 집착하는 기업을 견제할 수 있도록 동반성장지수 같은 협력지표 정보를 확충·제공해 이를 적절히 활용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