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기민당 대표 크람프카렌바워 보수 남성들 지지한 메르츠 꺾어… 메르켈 이후도 女총리 가능성 커져 NYT “獨, 남성 포퓰리스트 선택 안해”
7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기민당 전당대회에서 메르켈 총리(오른쪽)의 후임 당 대표로 선출된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 후보가 손을 흔들며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함부르크=AP 뉴시스
2005년부터 국가 수장을 맡아 온 메르켈 총리가 올해 10월 “당 대표를 그만두고 총리를 현 임기인 2021년까지만 하겠다”고 발표하자 소셜미디어에서는 “이제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나요”란 독일 남자 청소년들의 질문이 화제였다. 메르켈 총리 장기 집권의 한 단면인 셈이다.
메르켈 총리는 물러나지만 독일에서 남성 총리를 볼 가능성은 여전히 작다. 7일 전당대회에서 메르켈 총리의 후임으로 ‘워킹맘’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 기민당 사무총장(56)이 선출됐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남성 세력이 총결집해 프리드리히 메르츠 전 원내대표(63)를 밀었지만 메르켈 총리의 지원을 받은 크람프카렌바워 후보를 앞서지 못했다. 크람프카렌바워 후보는 517표를 얻어 메르츠 후보를 35표 차로 따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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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람프카렌바워 신임 기민당 대표는 메르켈 총리가 2000년부터 당 대표를 지내는 동안 지역에서 꾸준히 정치 경험을 쌓았다. 프랑스와 룩셈부르크 국경에 있는 작은 지역 자를란트주의 내무부 장관, 교육부 장관, 노동부 장관을 거쳐 2011년부터 주지사를 지냈고, 올 2월 메르켈 총리의 지명에 따라 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됐다. 동독 출신인 메르켈 총리와 달리 서독 출신이며 아이가 없는 메르켈 총리와 달리, 22세 때 채굴 엔지니어 남편과 결혼한 세 아이의 엄마다. 온건하고 실용적인 노선으로 ‘미니 메르켈’이라고 불려왔다.
하지만 크람프카렌바워 신임 대표는 당선 연설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많은 글을 읽었다. ‘미니(메르켈)’ ‘복사’ ‘더 이상 같을 수 없는’ 이런 수식어가 있는 걸 알지만 나는 여러분 앞에 나 자신으로 서 있고, 내 삶으로 서 있다. 그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와의 차별화를 예고한 대목이다. 대표 선출 이후 첫 행보로는 당내 보수적인 성향의 청년조직 수장인 파울 치미아크(33)를 사무총장으로 선출하며 당내 통합을 꾀했다.
크람프카렌바워 신임 대표는 메르켈 총리와 비교해 유럽 통합에 대해서는 더 신중하고, 러시아에 대해서는 더 적대적이며, 이민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성향을 보인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메르켈 총리보다 여성의 사회 진출에는 더 적극적이나 동성애 결혼에는 더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크람프카렌바워 신임 대표가 언제든 ‘새로운 총리’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만큼 메르켈 총리의 레임덕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