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민원에 예산 10조원 증액
27일 국회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토교통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환경노동위 등 15개 국회 상임위원회가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요구한 증액 규모는 10조3030억 원에 이른다. 예산 심사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지만 의원들이 상임위 단계에서 지역구 관련 사업을 밀어 넣은 것이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예산안조정소위(예산소위) 단계에서 의원들의 ‘쪽지 예산’까지 추가되며 나라 가계부가 누더기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흑산도공항’ 등 국회가 밀어 넣은 10조 원 예산
예를 들어 내년도 예산이 ‘0원’이었던 울릉도와 흑산도의 소형 공항 건설 비용은 국회 상임위인 국토위 예비심사를 거치며 각각 30억 원과 100억 원의 예산이 증액됐다.
경북 포항 송도와 도구해수욕장을 정비하는 비용은 당초 정부 예산안(53억5000만 원)보다 144억5000만 원이 늘었다. 안성∼구리 고속도로, 함양∼울산 고속도로 보상비로 각각 2000억 원과 495억 원이 증액됐다. 이른바 지역 숙원 사업으로 불리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와 관련된 사업의 증액 규모도 컸다. 새만금 투자 유치 지원에 680억 원, 민주시민 교육 활성화 예산에 44억 원의 예산이 국회를 거치며 추가됐다.
○ ‘밀실, 깜깜이 심사’ 되풀이
일각에서는 상임위에서 밀어 넣은 10조 원대의 민원성 예산이 졸속 심사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산을 종합 심사하는 예결위는 상임위가 증액한 예산을 깎을 권한이 있다. 하지만 지역 예산을 지키려는 의원들의 민원이 빗발치면 늘리는 사업과 줄이는 사업 간 셈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국회와 정부가 어떤 사업이 필요한지 예산을 엄정하게 판단하지 못해 예결위 간사로 구성된 소소위가 비공개로 예산을 주무르는 ‘밀실 심사’ ‘깜깜이 심사’가 연중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이유다.
윤영진 계명대 행정학과 명예교수(좋은예산센터 이사장)는 “밀실에서 쪽지예산이 오가면 해당 사업이 꼭 필요한 사업인지 국민이 투명하게 알 방법이 사라진다”며 “이런 관행을 없애려면 상임위 차원에서 불필요한 사업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 민원 수용하려 정부안 누더기로 전락할 우려
470조 원이라는 예산안의 ‘덩치’를 유지하면서 국회의 민원성 예산을 일부 받아들여야 하는 정부는 어떤 사업의 예산을 감액할지 고심 중이다. 국민 실생활과 밀접하지 않은 사업을 줄이거나 국채 상환 시 적용하는 이자율을 당초보다 낮게 잡아 이자 상환 관련 예산을 줄이는 방법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