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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의 마음의 지도]정신분석학은 ‘프랜차이즈’ 시스템

입력 | 2018-11-16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정신분석학은 히스테리 환자 치유라는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환자의 치유는 물론이고 인류 문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탄생 과정에서 빈의 내과 명의였으며 자신을 돌보아 주던 브로이어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히스테리 연구’를 공저로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브로이어는 환자가 전이 현상을 일으켜 결혼하자고 포옹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서 중도 하차해 버렸습니다. 그가 계속했다면 적어도 정신분석학의 공동 창시자로 기록되었을 겁니다. 반면에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일으키는 마음의 문제들을 집요하게 연구해 정신분석학을 학문, 치료법, 문화의 아이콘으로 확장시켜 오늘의 영광을 이루었습니다.

프로이트 생전의 정신분석학은 그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폐쇄적인 모임이었습니다. 천재성과 부단한 노력에 힘입어 크게 발전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의 수용에는 매우 인색했습니다. 다른 이론에 대한 저항이 너무 심해서 여러 사람들이 스스로 떠나거나 축출되었습니다. 첫째로 떠난 아들러는 ‘개인 심리학’을 창시하고 왕성한 활동을 했습니다. 이어서 떠난 융은 ‘분석심리학’ 학파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그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측근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이 주도한 국제정신분석학회(국제학회)의 초대 회장으로 내세웠습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이 유대인의 학문으로 간주되는 것을 매우 꺼렸습니다. 융은 유대인 혈통이 아니었습니다. 이탈자가 연이어 생기면서 신경을 곤두세운 프로이트 모임은 정신분석학의 순수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강화했습니다.

새로운 의견을 가졌다고 꼭 그 집단을 떠나지는 않습니다. 부다페스트와 베를린을 거쳐 영국 런던에 정착한 클라인은 프로이트가 발전시키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고 주장해 자신의 학파를 이루었습니다. 프로이트의 딸인 아나 프로이트와 추종자들은 순수성 보호에 집착했습니다. 결국 두 집단은 충돌했고 영국학회는 3개 분파로 나누어졌습니다. 클라인 학파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남미, 호주, 미국 서부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등 프로이트 학파 안에서 영향력 있는 분파로 자리 잡았습니다.

프로이트가 세상을 떠난 후 정신분석학의 지평이 본격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창시자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상관계, 자기 심리학, 상호주관성, 관계학 이론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이드 심리학과 자아 심리학에 국한되어 있던 정신분석학이 통합이 불가능할 정도로 풍성해진 것이지요.

그러면 정신분석학의 순수성이나 차별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국제학회가 규정하는 정신분석가 수련은 엄격하고 어렵고 여러 해가 걸립니다. 분석가 후보생은 교육 분석가에게 정신분석을 받아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문헌 세미나를 통해 이론과 기법에 익숙해져야 하며, 지도 분석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다수의 환자를 직접 충분히 잘 분석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자격 취득을 하려면 지원하고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체계화된 전통적인 도제 시스템이 아직 유지되고 있습니다.

분석가 수련을 시키려면 그 지역에 국제학회 인증 분석가가 4명 이상 모여서 신청을 해야 합니다. 심사 후에 인증을 받아야 공인된 수련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끝이 아닙니다. 매년 봄, 가을에 3인 위원회가 와서 수련 과정과 결과를 지도, 감독, 인증합니다. 인증된 분석가 수가 늘어나면 잠정적 독립, 완전 독립 상태로 진급(?)됩니다. 국제학회의 인증은 정신분석학 지점(?) 설립 허가와 같습니다. 설립과 운영을 본점 격인 국제학회가 일일이 지도 감독합니다. 정신분석학의 보급도 일종의 엄격한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따라 움직입니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이라면 ‘갑’과 ‘을’이 생각나시나요? 아무리 자기 성찰 능력을 키운 분석가들이 모여도 인간의 본성인 무의식의 흐름과 욕구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정신분석학의 역사에서도 부끄러운 일들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일례로, 남미 군사독재정권의 고문에 가담했던 분석가들의 처벌도 적당히 넘어갔습니다. 소송으로 학회의 재정이 고갈될 것을 걱정했을 겁니다. ‘갑’으로 활동하던 국제학회가 힘의 열세에 따라 ‘을’이 되어버렸던 겁니다. 세상은 다 비슷하게 돌아갑니다.

정신분석학은 원산지인 유럽, 수출 지역인 북미, 남미를 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관심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국제학회의 영향력이 4개 지역으로 전개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유럽, 북미, 남미의 서양 가치관과 아시아태평양,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이 포함된 동아시아 지역의 가치관이 크게 다르다는 점입니다. 준비 없이는 소통 과정에서 이해보다는 오해의 소지가 큽니다. 한중일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는 사회, 문화, 법체계의 고유성에 대한 존중 없이 익숙한 가치를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고집한다면 잃는 것이 클 수도 있습니다. 일방적 세계화보다는 세계화와 지역화를 병행하는 현명함이 특히 ‘인간의 심층적 이해’가 목적인 정신분석학은 물론이고 타 분야의 국제 관계에서도 보편적인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