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비슷한 예는 많다. 얼마 전 집 근처 교차로에서 대형사고가 또 발생했다. 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는 교차로다. 다행히 며칠 전부터 안전을 위해 교차로 신호 운영 방식이 바뀌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신호 정체가 심하다고 아우성이다. 이럴 바엔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주장도 나온다. 애초에 이 교차로는 위험하게 설계됐다. 두 터널이 교차로를 사이에 두고 이어지면서 터널을 빠져나오는 차와 터널에 진입하는 차가 얽히고설키게 됐다. 터널에서 빠져나온 차들이 교차로에 이르기 훨씬 전부터 다른 차들과 섞이게 만들었다면 좀 나았을 것이다.
위험한 설계를 바로잡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히 개별 터널이나 교차로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설계기준은 만족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터널과 교차로가 만나고 또다시 터널이 이어지는 경우의 설계기준은 없다. 개별 시설이나 구조물에 대한 설계기준은 있지만 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좀 더 큰 그림에 대한 기준은 없다.
선진국은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안전진단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도 같은 제도가 있지만 진단 대상에서 빠지는 시설이 많고 비용이라는 현실적 장벽 때문에 진단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기도 한다. 이제라도 설계기준 너머에 있는 위험요소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자. 잘못된 설계로 귀중한 목숨과 시간을 잃어버리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