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끄지 실종’ 개입의혹 후폭풍
자말 카슈끄지가 실종된 ‘사건 현장’인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 이스탄불=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 카슈끄지 사건에 대해 “끔찍하다”라고 표현하며 “그것(사우디 배후설)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매우 화가 날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것이며 가혹한 처벌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사우디에 군사장비 및 무기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는 제재론까지 부상하고 있다.
당장 23일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릴 계획이었던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 행사는 반쪽짜리가 될 위기에 놓였다. ‘사막의 다보스’로 불리는 이 행사는 서방의 주요 인사를 한자리에 모아 사우디 왕세자가 자신의 각종 경제 및 산업 개발 프로젝트를 공개하는 행사다. 그러나 영국의 대표적 운수·항공·관광회사인 버진그룹 리처드 브랜슨 회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최고경영자(CEO) 등이 이미 불참 의사를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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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정부는 여전히 “사우디 정부를 향한 모든 의혹은 거짓이며 근거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다음 날인 14일에는 성명을 통해 “왕국은 경제적 제재든, 정치적 압력이든, 아니면 거짓 의혹 제기든 협박과 우리를 해치려는 시도를 결단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떤 행동의 타깃이 된다면 그보다 강한 행동으로 대응할 것을 확언한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터키 및 미국 정부가 이미 카슈끄지 살해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들을 확보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터키 언론들은 카슈끄지가 찬 애플워치를 사건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으로 보고 있다. 카슈끄지가 영사관에 들어가기 전 애플워치 녹음 기능을 켜 두었고 이 파일이 동기화된 아이클라우드에 저장돼 있다고 13일 전했다. 사망 당시 현장음이 고스란히 녹음된 파일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애플워치가 영사관 밖에 있던 카슈끄지의 아이폰과 블루투스 연결 범위를 벗어났을 가능성이 높고 따로 영사관 내 와이파이와 연결됐을 가능성도 낮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나온다.
그동안 사우디 정부와 언론들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아랍권 국가 중에서도 보수·강경 성향이 강한 사우디의 이미지를 탈바꿈시킬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인물로 포장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중동 현지 언론들조차 “사우디의 개방을 이끌겠다는 그의 계획이 눈앞에서 시들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카슈끄지는 그동안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인 칼럼을 써 왔다. 지난해부터 사우디 정부의 체포를 우려해 미국 등 해외에 머물러 오다가 약혼자와 결혼에 필요한 서류를 받기 위해 2일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을 방문한 뒤 연락이 끊겼다. 그의 터키인 약혼녀 하티제 젠기즈 씨는 13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우디는 카슈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공식적으로 밝히라”고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