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가수 최양숙이 불렀던 노래 ‘가을 편지’입니다. 고은 시인의 즉흥시에 김민기가 곡을 붙였습니다. 1971년에 탄생한 이 노래는 김민기, 양희은, 최백호, 이동원, 조관우, 보아, 박효신 등이 리메이크해 불렀을 정도로 널리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을 편지가 나온 1970년대 초반은 세계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시기였습니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공산국가를 향한 화해 정책인 ‘닉슨 독트린’을 선포하면서 국제사회는 해빙기로 접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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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중 양복 안주머니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들고 “역사적이다,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가 한껏 치켜세운 편지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였습니다.
트럼프는 며칠 뒤 열린 공화당원 대상 정치 유세 연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나는 과거에 거칠게 나갔고, 그도 마찬가지였다”며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리고 사랑에 빠져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어리둥절할 틈도 없이 “그는 나에게 아름다운 편지들을 썼다. 멋진 편지들이었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서로 악담을 하며 곧 상대를 제거할 것처럼 으르렁거리던 앙숙이 사랑에 빠졌다니 이보다 더 극적인 반전이 있을까 싶습니다. 트럼프의 발언에는 자신의 대북 정책의 성과를 부각시키기 위한 국내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퍼졌으나 판을 깨지 않기 위해 각국의 특사 외교 라인이 가동되면서 한숨을 돌리게 됐습니다. 남북 및 주변 4대 강국 간에 정상 및 특사들이 바쁘게 오가며 메시지를 주고받은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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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보다 값진 것은 없습니다. 최근 남과 북, 그리고 주변국 모두가 유연하고 조심스러운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뢰 속에서 극적인 타협과 전진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가을 편지’처럼 외롭고 헤매인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라면 무엇을 포용하지 못할까요.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