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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 시대 TV예능,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꽂히다

입력 | 2018-09-18 03:00:00


원치 않는 술자리만 해도 싫은데, 상사 비위까지 맞춰야 한다니. KBS ‘회사 가기 싫어’는 직장인의 ‘워라밸’을 망치는 회사의 민낯을 위트 있게 꼬집는다. KBS 제공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3개월. 누군가는 늘어난 여가시간을 알차게 보낼 궁리를 하고, 다른 누군가는 “줄어든 건 월급뿐, 업무량은 그대로”라며 한탄한다. 방향이야 어찌 됐든 ‘주 52시간 태풍’으로 직장인의 일상 풍경이 바뀐 것만은 확실하다. 최근 TV 예능계는 이런 소소한 일상 속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주목하고 있다.

“요즘은 옛날처럼 회식에 강제로 참석하게 하는 분위기가 아니니까 편하게 얘기해. 약속 없지?”

모두가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시계를 흘금거리는 오후, 별안간 ‘이사님’이 사무실에 들이닥쳐 쩌렁쩌렁 회식을 공지한다. 편히 얘기하라는 상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것쯤은 모두가 아는 사실.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 직원들은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애인에게 톡을 남긴다. “자기야, 오늘 영화 못 볼 것 같은데….”

KBS 2TV 모큐멘터리(mock+documentary·가상과 실제를 섞은 다큐멘터리 형식 드라마) ‘회사 가기 싫어’ 첫 회(12일)의 한 장면이다. 반강제적 회식 문화, 상사의 업무 떠넘기기 등 워라밸을 망치는 에피소드를 선보여 공감을 끌어냈다. 직장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제휴해 생생한 사례를 모았고, ‘직장인 자문단’을 꾸려 감수도 받았다. 기본적으로는 ‘교양 프로그램’이지만 예능 PD와 ‘개그콘서트’ 작가 등이 참여해 직장인의 애환을 ‘웃프게’ 그려냈다.

‘회사…’를 기획한 조영중 PD는 “직장인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 2회(19일 방송 예정)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도와 수직적인 조직문화 간의 괴리에 따른 혼란상을 집중 조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채널A·스카이드라마의 ‘식구일지’(위쪽 사진)와 SBS플러스 ‘야간개장’은 연예인 출연진의 퇴근 후 일상을 통해 주 52시간 시대에 늘어난 여가시간을 가치 있게 보낼 방법을 모색한다. 채널A·SBS플러스 제공

퇴근 후의 삶을 다룬 예능도 등장하고 있다. 해외여행처럼 큰맘 먹어야 가능한 것보다는 생활 밀착형 여가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달 시작한 SBS플러스 ‘야간개장’은 연예인 출연진의 저녁 시간을 관찰한다. 친구와 단둘이 맥주잔을 기울이거나(붐) 운동복 차림으로 피아노를 치는(성유리) 이들의 저녁은 화려한 ‘셀럽’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달 말 첫 방송 예정인 tvN ‘주말사용설명서’ 역시 주말에 가볼 만한 곳, 해볼 만한 것들을 출연진이 직접 체험하며 소개하는 포맷. 제작진은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만큼 주말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여행지와 힐링 아이템을 풍성하게 소개하고자 한다”고 의도를 밝혔다.

‘저녁이 있는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예능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채널A와 스카이드라마가 공동 기획한 예능 ‘식구일지’는 ‘홈밥(home+밥)’이 주제다. 출연진에게 주어진 ‘한 달간 식구가 함께 저녁 먹기’린 미션은 간단해 보이지만, 네 가족이 평일에 매일 오후 7시 모이는 건 녹록지 않은 일. ‘홈밥’ 미션에 도전한 가수 겸 배우 예원은 “프로그램 이전엔 가족이 서로의 일과도 잘 몰랐는데, 30일간 미션에 도전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워라밸’ 예능의 증가는 일상의 기쁨을 소중히 여기는 대중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심리와 맞물린 결과라고 해석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여가 예능의 대표 주자였던 해외여행 예능이 너무 많아 차별성이 약해지고 때론 위화감도 조성했다면, 일상의 여가를 다룬 예능은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내기 좋은 소재”라면서 “다만 너무 희화화하기보단 삶의 애환을 짚어주며 정보도 전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