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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최원목]한미 FTA 재협상 이익균형 이뤄졌을까

입력 | 2018-09-10 03:00:00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결과가 발표됐다. 정부는 자동차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의 이익균형을 이룬 협상이라고 자평한다. 관변 전문가들도 언론에 나와 그렇게 평론한다. 하지만 무슨 이익균형이 이뤄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다국적 투자 기업의 무분별한 ISD 제소가 최대 문제인데 배상금액의 상한선과 패소자 비용 부담 원칙, 사전 심사제도 등 제소 남용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에 대해서 한국은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FTA 합동위원회에서 제소 남용에 대해 논의해보자’는 선언적 합의만 존재한다. 합동위원회는 한쪽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결의할 수 없다.

모든 투자 관련 사안에서 국내 사법제도를 건너뛰어 국제 중재로 직접 제기하는 것도 문제다. 재협상에서 최소한 ‘투자계약’ 사안에 대해서는 국내 소송을 먼저 거친 뒤 중재로 이행하도록 변경할 수 있었다. 그래야 원래 국내법적 사안에 대한 최소한의 사법주권을 보호하고 단심으로 이뤄지는 국제 중재 판정의 오류 가능성도 줄이게 된다. 개정 문안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투자자에게 ‘커다란 손해’가 가해지면 간접수용으로 ISD 제소가 가능한 것도 문제다. 투자자를 괴롭히려는 의도로 취하는 일련의 정부 규제 조치가 원래 간접수용의 개념인데도 한미 FTA는 손해 발생이라는 결과지향적인 정의로 탈바꿈했다. 금융위기와 같은 비상 상황인지도 고려하지 않고 정부 정책의 의도도 중요하지 않다. 미국 론스타의 제소와 이란 다야니 가문의 제소 모두 외환위기라는 비상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취한 기업 인수 관련 규제가 아닌가. 이 점에 대해서는 재협상에서 손도 못 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중복 제소 금지를 성과로 내세운다. 동일한 정부의 조치에 대해 다른 투자협정을 통해 ISD 절차가 진행될 때 한미 FTA를 통한 ISD 진행은 불가능해졌단다. 그래서 한국-벨기에의 투자협정으로 한국 정부를 제소한 론스타가 다시 한미 FTA를 근거로 제소하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 법률가들이 놓은 함정에 빠졌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말이다. 개정의정서 4항을 해석하면 다른 협정에 의거해 ‘현재 개시되어 있거나 계류 중에 있는’ 동일 사안에 대해 동시 제소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 진행만 불가능하지 론스타가 한국-벨기에 협정에 의한 소송을 마친 뒤 순차적으로 한미 FTA로 제소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2021년 철폐될 예정이었던 화물자동차에 대한 25% 관세가 추가로 20년 연장돼 앞으로 24년 동안 화물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할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다. 차세대 성장동력인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정책인 글로벌 신약에 대한 약가 제도도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정부가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에 부여하는 약가 우대 정책은 종언을 고해야 한다. 한마디로 미국의 최대 목표인 자동차 비관세장벽, 화물자동차 관세, 신약 약가 부문 등을 모두 내준 셈이다. 도대체 무슨 이익균형이 이뤄졌단 말인가.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