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매 맞는 의사’ 매년 증가… 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 체험해보니
3월 서울 관악구 H+양지병원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한 환자가 치료를 거부한 채 응급실 문을 발로 차며 난동을 부리고 있다. H+양지병원 제공
매 맞는 의사가 해마다 늘고 있다. 2016년 560건에서 지난해 893건으로 껑충 뛰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500여 건에 달한다. 병원 내 폭행은 대부분 경찰에 신고하기 전 합의하는 경우가 많아 드러나지 않은 폭행 사건은 이보다 3, 4배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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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응급실은 ‘분노의 도가니’
의사 출신 이진한 기자(흰 가운을 입은 사람)가 17일 이 병원 응급실에서 119에 실려 온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H+양지병원 제공
유모 씨(27)는 친구와 소주 2병을 나눠 마신 뒤 갑자기 화가 난다며 술집 유리창을 내려쳐 손을 크게 다친 채 응급실을 찾았다. 이 경우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치료비가 두 배 정도 비싸진다는 병원 측 설명을 듣고는 분을 삭이지 못해 식식대며 계속 병동을 돌아다녔다.
술을 마시다 갑자기 얼굴에 두드러기가 나 응급실을 찾은 배모 씨(61)는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며 고함을 질렀다. 오토바이가 넘어져 머리가 살짝 찢어진 김모 씨(19·여)도 “왜 빨리 치료를 해주지 않느냐”며 불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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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한 안내’가 부족한 것도 문제
이 병원은 사설 경비원 4명을 두고 있다. 하지만 야간 근무 인원은 한 명이다. 출입관리와 순찰 업무를 하기에도 버거운 상황에서 술에 취한 환자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민간 병원에도 청원경찰을 의무 배치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전국 500여 개 응급의료센터에 청원경찰을 배치하려면 2000∼3000여 명이 추가로 필요해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의료계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인근 경찰서나 파출소와 핫라인으로 연결된 비상벨을 설치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정성균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응급의료 관리료를 신설해 국가가 경비원 비용을 지원해 주는 방법이 있다”며 “하지만 병원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바로 출동해야 사태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는 만큼 경찰과의 핫라인이 훨씬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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