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연구중심병원과 연구의사 역량을 키우고 의료기술 연구와 실용화를 막는 제도적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중심병원에 ‘산병협력단’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과거 필자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신기술개발단장으로 복지부 의료기기 연구개발(R&D) 지원 업무를 수행했다. 당시 의료 현장에서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현주소는 낮은 기술과 영세성으로 인해 대부분 중저가 제품 위주로 생산하는 것이었다. 제조 및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라는 명성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국산 의료기기 산업에 대한 원인 분석을 해본 결과, 의료기기 연구개발은 국가 투자도 늘어야 하지만 최종 수요자인 의료인과 병원의 요구가 반영된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산업계와 손잡고 의료기기 연구개발을 도와줄 수 있는 의료인의 역할이 필요했다. 의료인들이 산업체와 함께 개발하는 의료기기 사례로 폐기능이 심하게 손상된 중증 호흡곤란 환자에게 혈액을 신체 밖으로 순환시켜서 산소를 공급해 주는 인공허파 ‘에크모(ECMO)’를 꼽을 수 있다. 이 기계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발생 당시 중증 환자들의 생명 유지에 중요한 의료기기였으나 모두 수입돼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국산화 필요성을 인식한 의사와 공학자, 기업인들은 연구를 시작했고 현재 임상시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에크모의 임상시험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다른 의료기기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거나 연구자가 직접 바이오벤처기업을 만들어 생산과 임상시험을 진행해야 한다.
이런 ‘기술사업화’와 관련된 특허 출원, 기술 이전을 위한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는 게 산학협력단이다. 그러나 산학협력단의 기술사업화 사업은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효율성이 낮다.
의료 현장에는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의생명기초연구자, 의료정보전문가 등 많은 사람이 환자를 중심으로 각기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의료 현장에서 축적된 정보 등이 의료기기 개발의 기반이 되므로 다른 분야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아직은 성공 사례가 많지 않은 보건의료 분야, 특히 첨단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기술뿐만 아니라 의료 현장에서 실제 활용 가능한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제품화를 위한 인허가 전략을 수행할 전문 조직도 필요하다. 의료 현장을 잘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산업계와 협력할 산병협력단의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의 의료 수준은 높게 평가된다. 다만 대부분의 의사는 다국적 회사의 의료기기, 의약품을 사용해서 환자를 치료한다. 이런 상태로는 의료 발전에 한계가 있다. 의술과 함께 의료기기, 의약품이 선진국 수준으로 발달할 때 한국의 의료 수준은 세계 정상에 오를 것이다. 의사와 병원의 연구개발에 날개를 달아 에크모 같은 최첨단 의료기기의 국산화를 빨리 이뤄내기를 기대한다.
박소라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