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여기에 없도록 하자’ 펴낸 염승숙
노동하지 않는 어른들은 햄이 되는 세상의 청년들을 그린 소설 ‘여기에 없도록 하자’. 염승숙 소설가는 “원래 말랑한 얘긴 잘 못 쓴다”며 “생존의 처절함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염승숙 소설가(36)는 “인간이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생을 지속해 나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 이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2005년 등단한 그는 단편집 ‘그리고 남겨진 것들’을 비롯해 장편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 등에서 평범하지만 소외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신작 ‘여기에 없도록 하자’(문학동네·1만3500원)는 염 소설가의 두 번째 장편으로, 노동하지 않는 어른은 모두 햄이 되어 버리는 가상세계에 살고 있는 청년 ‘추’의 이야기다.
“많이 발전했다곤 하지만 현대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은 존재하잖아요. 소설을 쓰기 전부터 자신의 상황을 비관해 생을 마감하는 청년을 많이 봤어요. 그들을 낙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고작해야 햄이 되지 않기 위해서만 노동하는 이 절실한 행위를 살아 움직인다고 표현할 수 있는가. 햄으로 죽지 않기 위해 끝도 없이 노동을 지속해 나가야만 한다는 건 숙명적으로 불가사의한 난제인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소설에서 ‘햄이 된 기분이 어떠냐’는 추의 질문에 햄이 된 ‘에이’ 군은 “내가 돼진데 아버지가 소였다는 걸 알게 되는 기분”이라며 “오묘하고 기괴하며 필연적으로 자기혐오적”이라고 설명한다. 염 소설가는 “우연히 식료품점에서 제품 뒷면 성분표를 보다가 가공 햄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충격을 받아 소설에 녹였다”고 말했다.
햄이 되지 않은 인생도 결코 나을 게 없다. 가진 것은 몸뚱이뿐인 추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직업은 게임장의 ‘인간 샌드백’이다. 추와 함께 살고 있는 대학 선배 ‘약’도 끊임없이 목이며 팔목에 자해를 일삼는다. 이렇다 보니 “청춘인데 청춘이 아닌,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소설 속 이야기가 섬뜩하지만 낯설지 않다. 판타지 동화에나 나올 법한 설정과 이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우리가 사는 현실과 닮았다.
소설은 장시간 노동에 따른 주인공의 피로감과 무력감이 안개처럼 깔려 있다. “살아가고야 만다. 그게 생이다. 나의 인생이다. 그러니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 없도록 하자, 그런 소박한 바람만이 생의 전부”란 추의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소설의 제목과 연결되기도 하는 이 내용에 대해 염 소설가는 “그럼에도 그들이 여기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