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경유차는 상업용, 휘발유(가솔린)차는 승용차로 비교적 구분이 명확했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경유차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등장하고 ‘클린 디젤’이 화두가 된 2000년대 후반부터는 정부에서도 디젤승용차를 적극 장려하면서 경유차 비율은 점점 늘어났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연료의 생산 단가는 휘발유보다 경유가 더 비싸다. 우선 경유는 상대적으로 분자량이 큰 탄화수소로 이뤄져 있어 휘발성이 휘발유에 비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휘발유보다 더 고온에서 연소시켜야 한다. 또 증류 과정에서 황 같은 불순물이 많이 포함될 수 있어 별도의 탈황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이나 유럽에서 휘발유보다 경유가 싼 이유는 세금을 통해 국가의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조절하는 정부가 오랜 기간 휘발유에 높은 세금을 부과해 경유 가격을 낮춰 왔기 때문이다. 반면 연료에 붙는 세금이 상대적으로 적은 미국에서는 경유가 휘발유보다 좀 더 비싸다. 한국에서는 주로 경유 엔진으로 판매되는 SUV가 미국에서는 휘발유 엔진으로 많이 팔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아닌 대기오염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미세먼지의 원인 물질 중 하나인 질소산화물(NOx)을 휘발유차보다 더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경유가 연소되는 온도는 대기 중의 안정적인 산소 분자를 반응성이 높은 산소 원자로 쪼갤 정도로 높다. NOx 자체가 미세먼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기의 산화력을 높여 결과적으로 미세먼지가 잘 생성되는 환경을 만든다.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강화되고 있는 경유차 규제는 이 같은 NOx 과다 배출 때문이다. 2015년 미국에서 폴크스바겐이 의도적으로 NOx 등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해 집단소송 사태를 빚은 ‘디젤 게이트’ 사건 이후 국제적으로 경유차에 대한 인식은 더 악화됐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BMW 화재사고 역시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를 탑재한 디젤차 모델인 520d에서 일어났다. 발화 원인으로 지목된 EGR는 NOx가 포함된 배기가스를 한 번 더 엔진에서 연소해 그 양을 줄여 주는 장치로, 이 장치 없이는 환경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 그간 정부의 정책적 장려와 자동차 회사의 광고에 따라 경유차를 구입한 소비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경유차가 무조건 좋다고 할 수 없듯 일방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높은 연비, 낮은 이산화탄소 배출 등 경유차가 가진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경유차를 ‘0’으로 만드는 걸 목표로 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비율로 경유차를 유지하면 좋을지 고민해야 한다. 결국 환경문제 개선과 경제성, 사회적 파급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선 과학적인 조사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단순히 경유차 소비자를 옥죄는 방식의 규제 강화는 시간 낭비와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