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문학적 용어에서 일상어로
혐오의 시대별 용법을 살피기 위해 1920년부터 현재까지 98년간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혐오’란 표현을 분석했다. 1960년대 이전, 혐오는 대개 연재소설, 문학작품을 다룬 기사, 이념 갈등을 다룬 외신에 등장했다. 일상어와 거리가 먼 어려운 말이었다.
이러한 혐오 대중화의 배경은 뭘까. 전문가들은 여성 혐오 이슈의 대두, 인터넷 커뮤니티의 성장에서 찾는다. 채세진 꿈꾼문고 대표는 “2010년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가 출간돼 화제를 일으켰다. 당시 영어 단어 ‘misogyny’가 ‘여성 혐오’로 옮겨지며 페미니즘의 밖까지 혐오란 단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혐오 열광 사회, “이면의 사회적 스펙트럼 묻혀선 안돼”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일부는 혐오가 충돌하는 장이 됐다. ‘극혐’이란 단어도 취향을 드러내는 말로 쓰일 정도가 됐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혐오 감정을 갖고 있되 공개하기 부끄러워했던 이들조차 혐오를 노출하고 공유하면서 ‘혐오의 연대’가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근래 젊은 층에서 인기가 높은 힙합에서는 래퍼 블랙넛과 나플라의 가사가 여성혐오적 구절을 포함해 논란이 됐다. 흑인음악 미디어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은 “직설적 표현과 혐오는 엄연히 다르다”며 “해외에서는 혐오 표현에 대한 자성 움직임이 근래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유명 래퍼들을 모델로 기용한 대기업에서 광고 보이콧 움직임이 뚜렷한데,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내는 이들에게 이런 보이콧이 행사되는 것이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포증, 차별, 거부감 등 우리 사회에 산재한 다양한 부정적 스펙트럼이 모두 혐오란 표현 하나에 깔때기처럼 수렴하는 현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혐오의 주된 심리적 기저는 두려움과 불안”이라면서 “낮은 취업률과 비정규직, 양극화 문제 등 사회경제적 요인을 먼저 들여다봐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