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당시 오스트리아와 스코틀랜드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오스트리아 축구대표팀인 마티아스 진델라와 월터 나우쉬가 기자의 인터뷰를 받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제1·2회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와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개최국이 우승에 얼마나 유리한지 입증됐다. 1938년 제3회 대회를 앞두고 또 개최와 관련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독일, 프랑스, 아르헨티나가 개최신청을 했다. 독일은 나중에 철회했다. 1936년 FIFA의 54개 회원국 중 40개국이 프랑스에 찬성표를 던졌다. 유럽과 남미가 번갈아가며 월드컵을 개최한다는 원칙을 주장했던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이 결정에 반발했다. 대회를 보이콧했다. 투표 결과는 FIFA를 이끌어온 줄 리메 회장을 향한 반발로 해석됐다.
FIFA는 오스트리아의 공백을 메우려고 잉글랜드축구협회에 월드컵 출전을 부탁했다. 잉글랜드는 준비 부족을 이유로 거절했다. 아시아대표로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출전했다. 일본도 참가신청을 냈지만 중일전쟁으로 지역예선에 나가지 못해 몰수게임 처리됐다. FIFA는 동인도-미국의 승자가 본선에 나간다고 결정했다. 미국은 이 같은 방침에 반발해 출전을 포기했다. 결국 네덜란드령 동인도는 예선도 치르지 않고 제3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서 월드컵 본선을 경험한 첫 아시아국가가 됐다. <계속>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