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발주 ‘1억 이상 공사’ 대상 7월부터 근로자 편의시설 의무화
25일 서울 금천구 도로공사 현장에 임시로 설치한 ‘근로자 쉼터’. 현장 관계자는 “어제 현장을 옮겨서 에어컨이 달린 임시 쉼터는 아직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시가 발주하는 모든 공사 현장에 설계 단계부터 이 같은 근로자 편의시설을 갖추도록 할 계획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한낮 기온 32.3도로 올해 서울 최고치를 기록한 25일 오전 11시 20분. 금천구 도로공사 현장에서 만난 박모 씨(29)가 땀을 닦았다. 박 씨는 현장에서 걸어서 약 15분 걸리는 건물의 화장실을 이용한다. 2년 전 일을 시작한 박 씨는 “오늘도 그렇고 앞으로 더 더워질 날만 남았는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화장실 가기 힘든 공사 현장에서 물을 자주 마셔 소변 볼 일이 많아지는 여름은 곤란한 계절이다.
현장 경력 20년이 넘어가는 최모 씨(45)가 “샤워실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며 거들었다. “여기는 그래도 대기업 건설 현장이라 낫지만 하도급 업체 같은 ‘2군’ 영세업체가 하는 데나 고속도로 건설 현장은 여전히 열악하다”며 “청소를 안 하는 임시화장실이 싫어 그냥 야외에서 볼일을 보기도 한다”고 했다. 마땅히 더위를 피할 곳이 없어 자재더미 아래 그늘에서 쉬거나 근로자들이 돈을 모아 임시로 천막을 세우기도 한다. 서울시는 적어도 시가 발주하는 공사 현장에서는 이 같은 일을 줄이기로 했다.
‘건설근로자의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 7조 2항은 ‘사업주는… 건설공사가 시행되는 현장에 화장실 식당 탈의실 등의 시설을 설치하거나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설치 범위나 비용 등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잘 따르는 곳이 많지 않다. 시 관계자는 “현장에 설치된 편의시설도 설계에 반영돼 있지 않은 임의시설인 경우가 많아 관리를 소홀히 하기 쉽다”고 말했다. 시가 조사한 결과 현재 132개 시 발주 건설 현장의 488개 편의시설 가운데 102개(약 20%)만 설계 단계부터 반영돼 있었다.
이날 동아일보 취재진이 찾은 현장에는 임시화장실과 휴게시설이 있었다. 공사지점은 2개였는데 한 곳에는 에어컨과 냉장고, 제빙기가 있고 누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도로 한복판 다른 한 곳의 임시화장실은 변기가 더러웠다. 현장 관계자는 “이틀 전 공사지점을 옮기면서 자리를 확보하지 못해 에어컨이 있는 휴게시설을 미처 설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시는 8월까지 계도기간을 거쳐 9월부터 점검, 단속해 편의시설이 없으면 시정 조치를 할 예정이다. 또 현장 안전점검 항목에 편의시설 설치 및 운영 현황을 새로 포함하고, 우수 건설 현장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할 계획이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