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신청 예멘인들 만나보니
21일 제주 제주시의 한 식당 주방에서 예멘에서 온 무함마드(가명)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그는 예멘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다. 제주=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예고 없이 다가온 ‘제메니’ 사회
대학생이었던 아흐메드(가명·사진 왼쪽)는 22일 서귀포시의 한 양어장에서 양식 광어에게 줄 냉동사료를 손질하고 있다. 옆에 있는 두 명은 인도네시아에서 온 근로자다. 이들은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얻었다. 서귀포=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이달 중순 열린 취업설명회에서 그는 지금의 일자리를 얻었다. 300명가량의 예멘인이 그처럼 제주 곳곳에서 일하고 있다. 대부분 숙식을 제공하는 조건이다. 정부는 한국인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이들에게 주선했다.
22일 찾은 제주 서귀포시의 한 양어장에선 예멘인 두 명이 양식 광어에게 사료를 주고 있었다. 이날 예멘인들은 쇠고기가 들어간 볶음 요리와 쌀밥으로 점심 식사를 해결했다. 할랄 고기(이슬람 율법으로 도축한 고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음식을 남기지 않았다. 아흐메드(가명·24)는 “지금은 할랄인지 아닌지 따질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주시의 한 돼지고기 가공업체에서도 예멘인 3명이 일하고 있다.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멀리한다. 하지만 이 공장에서 일하는 예멘인들은 돼지고기를 손으로 만지며 비닐로 포장한다. 이들은 이곳에서 돼지를 처음 봤다고 한다.
23일 낮 12시경 제주의 한 호텔. 입구 근처에 예멘인 6명이 앉아 대화하고 있었다. 이 호텔은 한때 예멘인 150명이 머물렀던 곳이다. 2차례 취업설명회를 통해 상당수가 일자리를 얻어 나가면서 지금은 30명가량 숙박 중이다. 보통 2인실에 4명이 쓰고 있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칼레드(29)는 “혹시 전공 관련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대학 성적표를 가지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가 보여준 대학 성적표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A학점이 많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제주에 있는 예멘인의 30% 정도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교육 수준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 가시지 않는 ‘가짜 난민’ 우려
하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가짜 난민’ 걱정이 크다. 예멘인이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해 온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얻어 돈을 벌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치안이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시민 김모 씨(39)는 “시내에 무리를 지어서 다니니 아무래도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이들이 앞으로 사고 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느냐”며 걱정했다. 다만 지금까지 예멘인과 관련해 경찰에 접수된 신고는 이들이 소란을 피웠다는 2건이 전부다.
기존 외국인 근로자와 갈등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예멘인에게 특혜를 준다는 이유다. 양어장을 운영하는 박모 씨(56)는 “최근 스리랑카 근로자들이 일 못하는 예멘인보다 돈을 더 달라는 요구를 하고 나섰다”고 말했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지역단체는 30일 집회를 열 예정이다.
논란이 커지자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4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예멘 난민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신속한 심사 절차, 엄격한 난민 수용 판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속한 시일 내에 직접 설명하고 건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제주=황성호 hsh0330@donga.com·신규진 기자
‘제주(Jeju)’와 ‘예멘인(Yemeni)’의 합성어. 제주를 통해 입국한 예멘인 수백 명은 앞으로 상당 기간 이곳에 머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