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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영민]인문사회 연구 지원 늘려야 4차 산업혁명도 가능

입력 | 2018-05-30 03:00:00


김영민 동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전국 사립대 인문대학장협의회장

요즘 트렌드를 주도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4차 산업혁명’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고도로 지능화된 ‘초연결 사회’를 맞아 새로운 게임 규칙이 등장하고 기존 산업을 와해시키는 혁신 기업들에 의해 우리가 여태까지 알던 상식이 하루아침에 뒤집어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2월 지능정보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 산업, 사회 분야별로 정책 방향과 추진 전략을 담은 ‘인간 중심 지능정보사회 실현’ 전략을 발표했다. 인문학자로서 안타까운 것은 이 비전 어디에도 인문학과의 융합 관련 내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연구용역 사업을 발주하면서 해외 주요 국가의 4차 산업혁명 전략과 정책을 앞다퉈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과 인문사회과학과의 융합·연계에는 너무 무관심하다. 새로운 과학기술의 바탕에 집단지성과 창의성의 원천이 되는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앞선 미국, 독일, 일본은 기술뿐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함께 발달한 국가다. 지속적 투자를 통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이 균형 있게 발전하면서 시너지 효과가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 자율자동차, 웨어러블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적용하려면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인문사회적 가치와 관점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기존 산업의 패러다임이 아닌 인문사회적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체계적인 인문사회적 탐구와, 기술이 아닌 인문사회적 관점에서 사회 시스템의 개혁이 동반돼야 한다.

정부 지원이 절실하지만 과학기술 분야에 비해 인문사회 분야의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2016년부터 정부가 인문학진흥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올해 한국연구재단 예산 5조1000억 원 중 인문사회본부 비중은 5.3%(2720억 원)에 불과하다. 현재 내년도 예산 논의 움직임을 보면 이마저도 더 깎이지 않을까 우려된다. 물론 2720억 원이 적지는 않지만 갈수록 중요해지는 인문사회 분야 연구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국내 한 금융기관의 사회공헌 예산이 2700억 원이었다. 세계 경제규모 11위 대한민국 인문사회 연구 지원의 현주소다. 세계 경제규모 10위의 캐나다는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SSHRC) 예산이 2018∼2019년 843억 원으로 우리나라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매년 20% 이상 증액해 2022년에는 1600억 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국가 R&D 예산 중 인문사회 비중은 20%로 우리나라 5.3%의 4배에 가깝다.

인문사회 분야 연구가 후퇴하면 기술 중심의 발전은 인류에게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수 있는 만큼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분야가 균형 발전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국립공원 지정 50주년을 맞은 지리산이 깨끗해지고 반달가슴곰이 서식할 정도로 자연 생태계가 되살아났다는 기사를 보면서 한쪽으로 치우친 한국의 지식 생태계가 떠올랐다. 지식 생태계가 건강해지려면 다양한 분야의 지식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지적 충돌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너무 강한 종(種)이 독식하면 그 생태계는 곧 무너진다.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예산 지원을 통해 학문 간 균형 발전이 가능하도록 정부의 관심을 부탁하고 싶다.
 
김영민 동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전국 사립대 인문대학장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