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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집밥 즈위슬랏 선생’이라고 불리고 싶다

입력 | 2018-05-29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한국에 사는 모든 외국인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뭐냐”는 질문을 한두 번 이상은 받는다. 나도 1996년부터 수백 번 들었다. 그런데 답을 주기는 어렵다. 특별하고 특색이 있는 음식이어야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불고기나 청국장, 산낙지 같은. 운이 좋아서 옛 직장에서 매달 한 번 구절판을 먹게 돼서 한동안 제일 좋아하는 한식이 구절판이라고 했으나 오히려 구절판을 아는 한국 사람이 내 주위에 적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2년 반 동안 한국을 해외에 홍보하는 해외문화홍보원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한식 관련 기사를 보면 늘 ‘신선로’가 맨 위에 등장했다. 하지만 내 주위에서 먹어본 사람은 별로 없다. 나 역시 그때도 먹어본 적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한턱내고 싶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그럼 요즘 제일 좋아하는 한식이 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김치찜이다. 아주 좋은 음식이고 싸고 맛있다. 한 접시에다가 찐 김치 4분의 1포기 정도와 돼지고기를 얹으면 된다. 간단하다. 단점이라면 와이셔츠에 김칫국물이 튀면 오후 내내 보기 민망한 얼룩이 남는다는 정도.

김치찜을 만드는 식당이 그렇게 많진 않은데 다행히도 회사 근처에 두 군데나 있다. 김치는 항상 다 먹지만 되도록이면 흰 밥은 반 이상 먹지 않으려고 한다. 밥이 탄수화물이고 먹을수록 살찐다는 말을 자주 듣기 때문이다.

김치찜 말고는 ‘집밥’을 좋아한다. 집에서 아내와 함께 밥, 국, 반찬을 먹는 것이 아주 기쁘다. 아내 말로 “소소한 행복”이다. 된장국, 콩나물국, 육개장, 순두붓국, 콩비지, 청국장, 시금칫국 등 다 맛있다. 생선구이도 잘 먹는다. 문제는 가시를 바르는 것이다. 서툴다 보니 가시가 커서 쉽게 바를 수 있거나 아예 가시 없는 생선을 제일 잘 먹는다.

집밥을 먹는 건 좋지만 나와 아내가 요리하는 것이 별로 즐겁진 않다. 우리는 각자 일 때문에 요리를 할 힘도 여유도 없다. 그 때문에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반찬가게를 자주 들른다. 반찬가게는 한국의 집밥 반찬을 볼 수 있는 작은 전시회장 같다. 가게를 운영하시는 부부 사장님이 매일 신선한 재료로 국과 반찬을 만드신다. 사들고 집에 들어가 데우고 밥만 하면 된다. 아주 편하다. 저염 음식인 데다 화학조미료도 들어가지 않아서 몸에 좋다.

어떤 음식은 특별한 시기에만 찾는다. 저녁에 제일 자주 찾는 음식은 단연 삼겹살이다. 고기를 먹되 구운 마늘, 파, 겉절이, 찌개도 같이 즐겨 먹는다. 삼겹살 옆에 김치를 구워서 쌈을 싸서 먹는다. 그리고 여름 점심에는 콩국수를 즐긴다. 회사 근처에 60년 넘은 유명한 콩국숫집이 있다. 더운 날에 시간을 잘못 맞춰 가면 밖에 줄을 서서 3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 들어가자마자 재빨리 선불로 계산해야 하고 메뉴도 덜렁 하나라 뭘 고를 필요도 없다. 식당 아줌마들이 무뚝뚝해서 먹고 나서 좀 더 앉아서 수다라도 떨게 되면 눈치 보느라 뒤통수가 따갑다.

물론 절대로 먹지 않는 음식도 있다. 개고기는 지금까지 먹지 않았다. 개를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지만, 내가 본 개농장의 상태가 끔찍했고 개를 죽이는 방법도 잔인하다고 여기니까 꺼린다. 그리고 성게, 멍게, 개불, 낙지, 해파리, 오징어, 문어, 주꾸미도 꺼린다. 냄새도 그렇고 맛도 그런데, 그보다 더 입에 닿는 느낌, 즉 식감이 끌리지 않는다. 사실 처음엔 떡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느새 떡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제 술떡, 송편, 쑥떡은 잘 먹는다. 반면 미역처럼 미끈거리는 것을 입에 넣으면 뱉고 싶은 느낌이 든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을 때 불고기나 비빔밥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면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음식은 매우 다양하고 의외의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아니면 나처럼 ‘집밥’이라는 애매한 답을 할지도 모른다. 집밥만큼 한국의 음식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 또 있겠나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밥, 고기, 야채를 적절하게 섞어놓은 건강하고 위대한 밥상. 신선로 대신 집밥을 홍보하는 그날이 곧 오리라 믿는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