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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칼럼]청와대 정책라인, 이러지 마라

입력 | 2018-05-24 03:00:00

패권정치-적폐청산 기조 위 천박한 이념으로 어지러운 1년
최저임금 인상 등 정책 속 위험을 못 본 척해온 잘못된 태도로 감히 민족의 염원 말할 수 있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명예교수

좋은 음식도 너무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 너무 자주 먹어도 영양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체질에 맞지 않는 경우는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국가의 정책도 마찬가지, 좋은 정책이라 하여 무조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 나름대로 한계와 위험을 지닐 수 있다. 그래서 정책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은 늘 이러한 한계와 위험을 볼 수 있는 눈과 이를 피해가고 넘어갈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달리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현 정부의 정책 운영이 마치 어쩌다 알게 된 맛있는 음식을 탐닉하는 아이 같다고나 할까, 영 미덥지 않아 하는 말이다. 자신이 어떤 체질인지, 또 그 부작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도 없이 연신 음식을 입으로 나르기만 하는 철부지 아이 말이다.

일례로 최저임금 문제를 보자. 저임금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려주고, 이를 통해 내수경기도 좀 활성화시키자는 것 아니냐. 음식으로 치면 우선 보기가 좋다. ‘이걸 왜 안 먹었지?’ 과감하게 먹지 못한 앞의 정부들이 어리석어 보이고, 이를 막았을 ‘가진 자들’이 부도덕해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안 해.’ 2020년 1만 원 목표, 바로 한입 가득 입에 넣었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영세 자영업자만 해도 그 수가 인구 대비로 다른 나라에 비해 두 배 세 배,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 판에 종업원 임금마저 시장가격 이상으로 올려주라니 어떻게 하겠나. 결국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지난 1년간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에서만 고용이 9만 명 가까이 줄었다.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을 과하게 먹은 것이다.

이렇게 줄어든 고용이 다른 부문으로 흡수되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었다. 정부가 자본과 노동, 그리고 정치권과 국민들의 인내와 양보를 얻어, 산업구조를 글로벌 분업 체계에도 맞고 고용유발 효과도 큰 쪽으로 개편해 왔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패권정치’와 ‘적폐청산’의 기조 위에 정부 혼자 직접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돈을 쏟아부은 게 주된 흐름이다. 결과적으로 고용 증가는 몇 달째 10만 명대,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나마도 반도체 호황과 그 후방효과 등, 정부 정책과 관계없는 변수가 크게 작용해서 그렇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또 고용이 크게 늘지 않는 것은 생산가능인구가 줄어서 그렇다고 한다. 눈이 없어 못 보는 것인지, 아니면 못 본 척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똑같다. 한마디로 탐닉이다. 무조건 입에 넣고,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몸에 좋다고 우기는 거다.

최저임금 문제만 이런 게 아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와 노동시간 단축 등, 다른 많은 문제에 있어서도 똑같은 현상이 목격된다. 그 안에 내재된 위험과 함정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못 본 체하고 있다.

덜컥 겁이 난다. 마침 남북관계가 일대 전기를 맞고 있는 시점이다. 이런 정도의 잘못된 눈으로, 아니면 위험과 함정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태도로, 민족의 염원인 평화와 통일을 연착륙시킬 수 있을까?

이를테면 이 자리에서 이야기한 일자리 문제만 해도 그렇다.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거나 남북이 하나가 되면 남쪽의 제조업은 대거 북쪽으로 이동하지 않을까? 반대로 북쪽의 노동력은 상당 부분 남쪽으로 이동할 것이고. 이 경우 남쪽의 일자리 환경과 노동시장은 엄청난 변화를 겪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이나 고민의 수준은 어느 정도 될까.

정치권의 단견과 억지, 그리고 천박한 이념에 기반한 패거리 정치와 대중영합주의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특히 청와대 정책라인과 같이 국가 전체의 정책을 관장하는 사람들은 무슨 문제든 긴 안목에서 그 이면의 위험까지를 봐 주어야 한다.

청와대 정책참모를 지낸 사람으로서 말하기가 부끄럽다. 더 잘난 것도 더 잘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성찰하는 차원에서 한마디만 더 하자. 이념과 규범을 강조하는 정부일수록 위험과 함정이 도사린 정책들이 잘 떠오른다. 함부로 따라가고 함부로 탐닉하지 마라.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