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수 정치부 차장
2015년 5월 참여연대가 국회 사무처에 ‘2011∼2013년도 18·19대 국회의 의정지원, 위원회 운영지원, 의회외교, 예비금 명목의 특수활동비 상세 지출 내역을 달라’는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 같은 답변을 보내면서 비공개했다. 2004년 대법원이 “기밀유지가 필요한 내용이 없어 공개하더라도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없다”고 했지만, 국회가 이를 다시 무시한 것이다. 이 때문에 매년 90억 원 안팎의 지출 내역이 여전히 베일 속에 있다. 비공개 사유도 매번 똑같았다.
그러나 사실 이는 의도적인 지연 전략일 뿐이다. ‘비공개 결정→이의신청 기각→소송 불복→대법원 확정 판결 뒤 공개 거부’라는 절차를 통해 2, 3년 정도 시간을 끌 수 있다. 그 사이 국회는 임기가 끝나 다시 국회의원을 뽑기 때문에 현직 신분으로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하급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했다. 심리불속행은 쉽게 말해 대법원에서 더 판단할 사유가 없어 기각하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즉시 효력이 있지만 국회는 공개를 계속 미루고 있다. 참여연대 문의에 국회는 처음에 “개인정보를 가리는 문제로 단시일 내에 어렵다”고 답했다. “시간이라도 정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를 받고서야 최근 “24일, 언제까지 공개가 가능할지만 알려주겠다”고만 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과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불법 사용한 두 전직 대통령이 수사를 받았고,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일부 특수활동비를 일자리기금으로 전환했다. 2001년 국회 특수활동비 공개를 처음 주장했던 참여연대 공동대표였던 박은정 변호사는 현 정부 들어 김영란법 위법 여부를 관리 감독하는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도 국회는 다른 기관의 특수활동비는 정비하겠다고 하면서 국회 내부 문제는 함구하고 있다. 그 대가로 20대 국회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내몰려 있다. 시민단체는 국회가 공개를 미루는 기간만큼 이행강제금을 물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만약 국회가 공개한 내용이 부실하고, 국회가 공적인 사용 목적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수사기관에 고발될 수 있다.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한 20대 국회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이제라도 모든 관련 소송을 먼저 취하하고, 특수활동비 상세 내역을 공개한 뒤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