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동의하는 교육의 대전제는 아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돕는 것 공론화 부쳐진 대입 개편안도 ‘재기불가능 사회’ 만들어선 안 돼 최소 여섯 번 직업 바꿀 미래 위해 어떻게 내려올지 알려주는 교육을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그냥 위대함과 정말 위대함의 차이는 정상에서 어떻게 내려오는가에 달려 있다. 정상에 오를 때는 꼭대기라는 하나의 지점만 보고 앞으로 나아가면 되지만, 내려올 때는 정상 아래 무한히 펼쳐진 곳 중 어디를 봐야 할지 막막하다. 어느 지점까지 가야 다 내려간 것인지, 어느 지점으로 내려가야 다시 올라갈 수 있는지.
나는 교육자이자 학부모로서 공교육의 공급자이면서 수요자이지만 한국 사회의 아킬레스건인 입시교육에 대해 감히 뭐라고 말할 엄두를 못 낸다. 워낙 많은 사람들의 입장과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부동산 과열 등 또 다른 한국 사회 난제들과 이어진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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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공론화에 부쳐진 대입 개편안은 어쩌면 큰애처럼 재수나 삼수를 해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희망과, 둘째 애처럼 소위 잘나가는 고등학교를 안 나와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희망 사이의 싸움이다.
물론 이런 소박한 희망에는 시스템의 맹점을 악용하는 고도의 전략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내신을 망쳐도 정시가 있으니 희망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내신을 망친 이유가 부모나 사회가 희망하듯 도전적인 뭔가를 하다 망친 게 아니라 그냥 게을러서 망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또 학생 스스로 학교 공부와 활동을 열심히 해서 학생부가 풍부해진 게 아니라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으로 꾸민 자료일 가능성도 무척 크다.
모두가 동의하겠지만 교육의 대전제는 학생이건 자식이건 아이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전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뒤로 물러서는 방법도 가르쳐줘야 한다. 이번 대입 개편안 공론화를 통해 재수를 하든, 후진 고등학교를 나오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타협안이 나올 수는 있다. 그런데 어떤 묘안이 나오든 아이들에게 나아가는 방법만 가르쳐주는 것이라면 입시는 여전히 진학과 진로의 곡예술로 남을 것이다.
몇 년 전 CNN에서 한국의 수능을 취재하면서 단 하루로 직장과 배우자, 소득, 거주지역 등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날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야말로 입시는 우리가 재기 불가능 사회(no second-chance society)라는 것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잔혹한 통과의례로, 여기에는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교육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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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래보고서 2055’에 따르면 2030년경에는 사람들이 평생 동안 최소 여섯 번 이상 직업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한다. 올라가게 될 산꼭대기가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인 셈인데 이제는 꼭대기에 어떻게 빠르게 올라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꼭대기에서 제대로 내려와야 할지 퇴로(退路)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