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을 살해했습니다…나는 살해를 잘못 발음해서 사랑을 말하는 실어증 환자처럼, 매일매일 나를 살해하며 살아왔습니다.”
소설 ‘빨강모자를 쓴 아이들(멘토프레스)’은 상당히 충격적인 서두로 시작됩니다. 폭력과 가난을 이겨낸 한 가족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소설입니다. 소설에는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합니다. 부부입니다.
첫 번째 화자인 조영애 여사는 근현대사의 큰 변곡점을 몸 하나로 버티고, 부대끼며 산 여성입니다. 가난과 남편의 폭력, 권위 앞에서 아이들을 위해 희생을 감내합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어느 날, 그녀는 철없이 굴던 여섯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폭력을 가합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습니다. 부끄러움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그녀는 아이에게 빨강모자를 씌워주었습니다. 그것이 아이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소설 곳곳에 은유와 암시를 상징하는 언어들이 가득 뿌려져 있습니다. 소설 속 ‘빨강모자’는 주인공이 차마 꺼내고 싶지 않은 봉인된 기억의 상징입니다. 상처와 죄의식, 구원을 상징하면서 마지막까지 소설 전체를 이끄는 알레고리로 작용합니다.
‘빨강모자를 쓴 아이들’은 폭력과 가난에 노출된 한 가족이 어떻게 이를 딛고 회생해 가는지를 보여줍니다. 문학의 힘을 빌려 진정한 사랑과 용서, 구원이 무엇인지를 제시합니다.
작가 김은상도 어쩌면 빨강모자를 쓴 아이였는지 모릅니다. 책날개에 작가는 자신의 고단하기 짝이 없었던 인생을, 마치 이력서를 쓰듯 덤덤하게 나열해 놓았습니다. 그는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뷰 하는 동안 어머니는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는 일은 어머니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고, 그 고통들의 일부가 글로 작성됐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실천했던 것은 참혹했던 한 인간의 삶을 재단하는 일이었다. 그나마 참혹의 최소화를 통해 폭력의 개연성을 지닐 수 있었는데, 이것이 초기 기획했던 에세이에서 휴먼다큐 소설로 전환한 가장 큰 이유였다. 삶의 잔혹에 대한 인간의 방어기제가 겨우 문학일 수 있겠다는 푸념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