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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서영아]강자의 이기심, 약자의 리스크

입력 | 2018-04-25 03:00:00


서영아 도쿄 특파원

개인적인 습관이지만 상황이 복잡할수록 그 상황을 핸들링하는 ‘사람’의 욕구가 무엇인지 짚어보곤 한다. 그러면 맞건 틀리건 그 나름대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가령 예측불허로 악명 높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의 모든 판단과 선택은 11월로 다가온 중간선거 승리와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남을 업적’에 연동된다고 해석하니 상황을 이해하기 쉬웠다. 평소 “군사옵션도 불사하겠다”며 북한에 호전태세였던 그는 지난달 9일 전격적으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하겠다고 나섰다. 마침 전직 포르노 여배우의 성추문 폭로 방송이 임박해 신경이 곤두선 상황이었다. 이후 그는 백악관 핵심에 강경파만을 포진시키며 김정은을 압박하면서, 한편으론 북한과 물밑교섭 작업을 해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혹은 일본 외교가는 이 같은 트럼프의 이기적 욕구를 읽지 못했던 듯하다. 트럼프가 그날 아침 전화로 “신조, 굿 뉴스다”라며 북-미 정상회담 추진 방침을 밝히자 충격에 빠진 아베는 즉석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미국 플로리다까지 날아간 아베가 트럼프에게서 건진 것은 “일본인 납치문제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구두 약속뿐이다. 공동기자회견에서는 양국 간 무역협상의 방식을 놓고 두 정상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간 밀월을 유지해온 트럼프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거라고 믿었지만 오산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웃는 얼굴로 트럼프를 대하는 아베의 모습에서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묻어났다.

상대적으로, 김정은은 트럼프의 욕구를 간파해 제대로 파고들었던 것 같다.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중간선거 승리와 재선까지 거론하며 미국이 바라는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문재인 정권이 올림픽의 성공 개최나 남북대화의 공을 모두 트럼프에게 돌린 ‘칭송 외교’도 주효했다. 트럼프의 성격을 잘 파악해 분위기를 맞춰주며 지금의 대화국면을 만들어온 한국의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한국 정부 주변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트럼프 노벨평화상’ 아이디어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아베 정권은 왜 트럼프의 속내를 읽지 못했을까. 그 자신이 자국에서 이기적인 강자 역할에 젖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막상 일본에서는 아베의 사적 이해에 공적 영역이 휘둘리고 있다. 2대 학원 스캔들로 일본의 관료조직이 만신창이가 된 것이 그 전형이다. 아베 정권은 자신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관료들에게 ‘벼락출세’로 보답했다. 그러고는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이들을 ‘꼬리 자르기’에 사용하고 있다.

공(公)의 영역에 속한 사람들의 행태를 사(私)의 논리로 이해하는 게 빠르다면 그건 바람직한 세상은 아니다. 이런 곳에서는 갑질이 통하고 권력의 눈치를 보고 권력에 기생하려는 세력이 번성한다. 약자는 판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리스크를 감내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트럼프와 아베의 경우에서 보듯, 지금은 강자의 이기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대다. 그리고 그 강자 트럼프에게 한반도의 운명이 상당부분 달려 있는 게 현실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트럼프 사심의 잣대가 갑자기 바뀌지 말란 법이 없다. 자타 공히 ‘맹우(盟友)’로 여겼던 아베가 트럼프에게 당하는 것을 보며, 더 힘없는 처지인 한국의 입장에서는 더 조심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선다. 강자의 이기심이 작동하면 정의도, 대의명분도, 체면도 따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진정한 한반도 평화가 시작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