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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북한 동화 ‘황금덩이와 강낭떡’의 교훈

입력 | 2018-04-18 03:00:00


북한에서 출판된 동화 ‘황금덩이와 강낭떡’ 표지. 강낭떡을 쥐고 웃는 머슴에게 지주가 금덩이를 몽땅 주겠으니 떡 하나와 바꿔 먹자고 사정하는 장면이다. 사진 출처 우리민족학교 홈페이지


주성하 기자

북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김일성이 들려주었다는 ‘황금덩이와 강낭떡’ 동화를 배우며 자란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옛날 어느 마을에 대홍수가 나자 지주는 제일 소중한 황금덩어리들을 보자기에 싸 들쳐 메고 나무에 올라갔다. 그의 머슴은 강낭떡(옥수수떡)을 싼 보자기를 메고 옆 나무에 올라간다. 비는 며칠이고 그칠 줄 몰랐다. 점점 배가 고파진 지주는 머슴에게 황금 한 덩이와 강낭떡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머슴은 한마디로 거절한다. 날이 갈수록 지주가 주겠다는 황금덩이 수는 늘어가고, 마침내는 금을 몽땅 줄 테니 떡을 하나만 달라고 사정사정하지만, 머슴은 끝내 ‘난 금이 필요 없다’며 거절한다. 굶주린 지주는 결국 정신을 잃고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 홍수가 끝난 뒤 머슴은 지주가 남긴 황금을 차지하고 팔자를 고친다.”

이 동화를 통해 북한은 황금만능주의는 강낭떡 한 개보다 쓸데없는 욕심이라고 아이 때부터 세뇌하고 있다. 또 머슴보다 어리석은 지주와 자본가는 탐욕만 부리다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요즘 한반도 정세가 돌아가는 것을 보니 어렸을 때 배웠던 이 동화가 불쑥 생각났다. 바로 지금 김정은이 먹지도 못할 황금덩이를 부둥켜안고 점점 정신이 혼미해가는 지주의 신세이기 때문이다.

국력을 총동원해 핵과 미사일을 만들어 보따리에 싸 들었지만,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는 없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는 무서운 홍수처럼 언제 끝날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김정은은 황금덩이를 꺼내선 미국과 한국을 향해 떡을 바꿔 먹자고 손을 내민 형국이다.

문제는 아직 북한이 동화 속 지주처럼 굶주려 정신이 혼미해진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달 중국에 가서 “한미가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해 평화 안정의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 동시적인 조치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생각과 거리가 있다. 그의 속내는 “단계적 접근 방식을 택한 과거의 협상이 모두 실패했고, 북한이 시간을 버는 것을 허용하는 협상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선언하고, 최소한 먼저 핵시설을 불능화한 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이렇게 북-미의 견해차가 많이 클 때 김정은이 떠올려야 할 것이 바로 ‘황금덩이와 강낭떡’이란 단순한 동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굶주린 사람에겐 먹을 것을 쥔 사람이 갑이다. 그래서 홍수가 나자 지주와 머슴의 갑을 관계가 바뀌었다.

대북제재로 굶주려가는 북한은 이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아직까진 당당하게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주장하고 있지만, 앞으로 점점 목소리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 역시 시간이 자기편이 아님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 기운이 있는 바로 지금 최대의 양보로 최대의 실리를 택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가끔 억울한 생각이 들 때면 할아버지 김일성이 들려줬다는 이 동화를 떠올리면 좋겠다. 핵을 꼭 부둥켜안고 놓지 않으면 결국 목숨도 핵도 다 잃게 된다.

어른이 돼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김일성이 각색한 이 동화는 한편으로 매우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동화이기도 했다. 머슴은 갑이 되자 눈앞에서 지주란 사람이 굶어 죽어가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지주 자본가는 무조건 죽어야 한다는 북한식 계급 노선만 반영됐을 뿐, 생명존중 사상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 동화의 한국판은 좀 다르다. 지주는 금을 몽땅 내어주고 머슴에게서 강낭떡 하나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난 머슴이 남의 불행을 이용해 뜯어내는 데서 지주보다 더 영악한 기질을 보인 이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서로 떡을 나눠 먹고, 욕심 많던 지주도 뉘우치고 개과천선해 홍수가 끝난 뒤 둘이 사이좋게 지낸다’ 이렇게 바뀌면 훨씬 더 인간적인 동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성이야 제일 떨어지겠지만, 아이들을 교육하는 동화 아닌가. 동화가 아닌 현실에선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은 어떤 마무리로 끝날지 참 궁금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