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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개입 모두 노출땐 換투기-수출타격… 정부, 공개범위 고심

입력 | 2018-04-16 03:00:00

美, 외환시장 개입 정황 공개 압박




미국이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현황을 자세히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한국이 시장 개입을 통해 수출 가격경쟁력을 높여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원화 가치가 널뛰기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이 외환시장 개입 관련 통계를 대거 공개하면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 내용을 신속히 공개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충족하면서도 외환정책의 효율성을 훼손하지 않는 카드를 마련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 “인위적 개입으로 원화 가치 저평가”

미국 재무부는 13일(현지 시간) 공개한 ‘교역 상대국의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지난해 원화 가치가 올라가는 속도를 늦추려고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봤다.

보고서는 지난해에만 한국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0.6%에 해당하는 90억 달러(약 9조6300억 원)를 순매수해 원화 가치 상승을 막은 것으로 추산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분석을 인용해 원화 가치가 2010년 이후 1∼12% 저평가됐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인위적인 시장 개입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이 수출제품 가격을 떨어뜨려 미국 시장을 잠식한 반면 미국 기업이 한국에 수출한 제품의 가격이 비싸지는 효과가 생겼다고 보고 있다.

현재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한국 중국 인도 정도만 외환시장 개입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투명성 제고’라는 명분으로 한국이 정보를 공개하는 흐름에 동참하라고 압박 중이다. 이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는 경고장을 내민 셈이다.

○ 3, 6개월 단위 공개 방안 검토

초강대국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에 총력전을 펴는 국면에서 한국이 외환시장 개입 내용을 어느 정도 공개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한국 정부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 내용 공개 방침을 밝히면 원화는 강세 흐름을 타면서 수출업체에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는 원화 가치가 10% 상승하면 수출 물량이 0.12%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자동차 등 운송장비와 반도체 등 전기전자 분야의 영업이익률이 떨어질 수도 있다. 물론 원화 가치가 오르면 수입 물가가 낮아져 내수 진작과 소비 확대에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외환당국은 △외환시장 개입 현황 공개 주기 △개입과 공개까지의 시차 △매수 및 매도 내용 공개 여부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일단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 내용 공개 주기를 최대한 길게 둘 방침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3개월이나 6개월 단위로 끊어 공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 투기세력에 악용될 우려

아울러 정부는 외화 전체의 매수액과 매도액의 차이인 순매수액만 공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매수 및 매도 내용을 모두 공개하면 투기세력이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패턴을 읽고 지금보다 더 많은 투기적 거래를 시도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외환시장 개입 내용을 사상 처음으로 공개하기로 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의 사례를 검토하고 있다. 이들 3개 국가는 6개월 단위로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시장 개입 내용을 공개하기로 했다. 올해 상반기(1∼6월) 중 시장에 개입했으면 하반기(7∼12월)에 이를 공표하는 식이다. 정부 당국자는 “IMF도 각국 정부가 불가피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을 용인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정책 수단이 무력화되지 않는 범위에서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건혁 gun@donga.com / 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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