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영 경제부장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서 자동차 시장을 내주면서 철강 관세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으로부터 협상 결과를 보고받은 국무회의 참석자들이 한결같이 “이 정도면 선방했다”며 안도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렇게 안심하고 있을 때인가. 진짜 큰일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첨단산업 제품에 500억 달러(약 54조 원)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이 미국의 기술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미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중국은 2일 이에 맞서 미국산 수입품에 30억 달러(약 3조2000억 원)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은 이미 긴 잠에서 깨어났다. 첨단기술의 발전 속도는 미국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 500대 중에 중국이 202대를 보유하고 있다. 143대를 가진 미국을 한참 앞선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도 중국에 있다. 2015년 중국은 한 해 동안 100만 개 이상의 특허권을 신청한 첫 번째 국가가 됐다. 2위인 미국의 2배 수준이었다. 중국은 2016년 도·감청이 되지 않는 양자통신위성을 세계 최초로 쏘아 올렸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과 차세대 무선 통신기술 5세대(5G) 분야에서도 미국과 어깨를 겨루고 있다.
중국은 2025년까지 5G, 차세대 정보기술(IT), 항공우주 등 10개 핵심 산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한다(‘중국제조 2025’)는 목표를 세우고 국력을 쏟아붓고 있다. 군사 안보와 직결된 기술들이다. 미국의 관세 폭탄은 이런 기술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 굴기’를 ‘스푸트니크 쇼크’ 이상의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을 보면서 1957년 10월 옛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한 뒤 충격에 빠졌던 때의 일을 떠올린다.
그레이엄 앨리슨 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은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미중 패권 전쟁은 중국의 부상과 이에 대한 미국의 두려움으로 촉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가 3월 28일자(‘중국은 어떻게 무역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에 썼듯 미국, 중국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이다. 최소한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기간, 어쩌면 수십 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
신치영 경제부장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