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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해봐야 돈만 들지… 독신이 낫다”

입력 | 2018-04-01 10:50:00


[동아일보]


“주위에서 어른들이 ‘결혼은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니 그래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하면 문제고 안 하면 문제될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유통업계 대기업에 다니는 4년 차 직장인 조모(32) 씨의 말이다.

2000년대 이후 국내 혼인 건수는 꾸준히 줄어왔다.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혼인을 기피한다는 인식이 컸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힘들어하던 부모를 보고 자란 데다 출산 이후 경력 면에서 손해를 보거나 아예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

하지만 최근에는 결혼 적령기 남성의 혼인 감소세가 여성보다 가파르다. 저소득층은 오르는 결혼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아예 결혼 자체를 포기한다. 고소득층 사이에서도 결혼으로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굳이 결혼하지 않겠다는 의식이 퍼지고 있다. 왜 젊은 남성들의 행복 요건에서 결혼이 빠지게 된 것일까.


○ 남성 결혼 감소율, 여성 감소율 앞지르다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이후부터 남성은 30~34세가 결혼 적령기로 분류됐다. 여성은 25~29세가 결혼 적령기다. 결혼 적령기의 혼인 감소는 그간 여성이 견인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4년 30~34세 남성의 결혼 건수 증감률은 전년 대비 -6.6%로 남성 전체 증감률 -5.4%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같은 기간 25~29세 여성의 결혼 건수 증감률은 -10.3%로 여성 전체 증감률 -5.4%의 2배에 달했다. 결혼 적령기 여성의 결혼 건수 감소가 전체 결혼 건수 감소를 견인한 것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취업난으로 여성과 남성 모두 혼인 적정 연령이 상승했다. 2015년에는 여성 30세, 남성 32.6세로 남녀 모두 30대 초반이 결혼 적령기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30대 초반 결혼 건수 증감률에서 남성의 결혼 건수 감소가 소폭 앞서기 시작했다. 전년 대비 30~34세 남성의 결혼 감소율은 2.1%. 여성은 1.7%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 결혼 연령은 30세로 막 30대에 진입했다. 초혼 부부의 연령차별 구성비를 보면 남자 3~5세 연상이 27.2%, 1~2세 연상이 25.7%로 절반이 넘어 이때까지는 여성의 결혼 연령대가 20대 후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25~29세 여성의 결혼 건수 감소율은 2.2%로 남성과 비슷한 수준이다.

2016년부터는 결혼 적령기 남성의 결혼 감소가 두드러진다. 역시 결혼을 가장 많이 하는 연령대가 남성은 30대 초반이다. 전체 결혼 건수의 59%가 30대 초반이고, 여성은 20대 후반이 35.6%로 가장 많았지만 30대 초반도 31.2%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2015년 30~34세 남성의 결혼 건수는 전년 대비 9.7% 감소해 각각 8.2%와 8.6% 줄어든 여성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감소 속도를 소폭 앞질렀다. 남성 20대 후반도 결혼 건수가 9.5% 감소해 같은 연령대의 여성에 비해 결혼하는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중이다.

결혼 적령기 남성의 결혼 감소세는 해마다 가팔라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30~34세 남성의 결혼 건수가 2016년에 비해 10.3% 줄었다. 한편 여성은 30대 초반의 결혼 건수가 전년 대비 5% 줄었고, 20대 후반은 8.8% 감소했다.

경기 수원시에 사는 장모(30) 씨는 4년째 만나는 여자친구가 있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다. 중소기업에 입사한 지 4년 차지만 결혼과 출산을 고려하면 버는 돈이 너무 적기 때문. 장씨는 “결혼이야 어찌어찌 돈을 모으고 최대한 간소하게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아이까지 생각하면 맞벌이한다 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조만간 여자친구에게 결혼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고 결혼을 원한다면 관계를 정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남성들이 결혼 포기를 입에 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제적 문제다. 취업이 어렵고 준비 기간도 길어지면서 결혼 자금을 모으기 힘들어진 것. 3월 2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한국 청년층의 취업률은 27%로 35개 회원국 가운데 28위다. OECD 평균 취업률 41.4%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수치다.

[shutterstock]


○ 너무 가난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기를

지난해 12월 신한은행이 발표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취업준비생의 평균 취업준비 기간은 약 13개월로 1년이 넘는다. 남성 대졸자는 재수, 휴학, 어학연수 등 변수가 전혀 없다면 26세에 취업이 가능하다. 최근 취업난으로 스펙을 쌓고자 휴학하는 경우도 많아 실제 취업 연령은 이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인터넷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649개사를 대상으로 신입사원 평균 연령을 조사한 결과 남성 신입사원은 29.2세로 거의 30대가 돼야 비로소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기업 인사업무 관계자는 “규모가 크고 유명한 기업일수록 취업준비에 걸리는 기간이 길어서인지 신입사원 연령대가 매년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취업도 어렵지만 결혼자금을 모으는 것은 더 어렵다. 결혼에 소요되는 평균 비용이 대기업 기준 직장인 평균 초봉의 4배가 훌쩍 넘기 때문. 인터넷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지난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대졸자의 평균 초봉은 3855만 원이었다. 외국계 기업과 공기업이 각각 3464만 원, 3459만 원으로 뒤를 이었다. 중소기업은 평균 초봉이 2523만 원. 한편 결혼에 드는 비용은 2억 원을 훌쩍 넘는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웨드가 온솔커뮤니케이션에 의뢰해 작성한 ‘2017 결혼비용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14~2016년 2년간 신혼부부가 결혼에 쓴 비용은 평균 2억6332만 원으로 이 가운데 신랑 측이 65%, 신부 측이 35%를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1억7116만 원, 여성은 9216만 원을 부담한 셈이다. 대기업에 취업한 사원이 평균 초봉으로 3855만 원을 받고 매년 5%씩 연봉이 인상된다고 가정할 때 5년 남짓한 기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남성 평균 결혼 비용을 모을 수 있다. 중소기업 종사자라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10년가량 모아도 평균 결혼 비용을 마련할 수 없을 확률이 높다. 전체 정규직 급여생활자의 70% 이상이 중소기업에 종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직장인이 돈을 모아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남성 성혼율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수입이었다. 2016년 한국노동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저출산과 청년일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 최상위 10% 남성은 80%가 결혼한 반면, 최하위 10%에서는 6.9%만 결혼에 성공했다. 다른 소득분위에서도 소득이 많을수록 결혼한 사람의 비중이 높았다. 반면 여성은 소득분위 하위 10%도 42.1%가 결혼했다. 물론 여성도 최상위 10%는 76.7%가 결혼했지만 다른 분위에서도 보통 30~40%가 결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를 한국 결혼시장에서 ‘남성 생계 부양자-여성 가계 보조자 모델’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취업이 어렵고 높은 급여를 받는 경우가 드문 만큼 아무리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성화됐다 해도 자신보다 경제 상태가 나은 남자를 선택하는 풍조가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 “나 챙기기도 힘든데 가정은 무슨”

결국 저소득층 남성은 결혼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2015년 동아닷컴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미혼남녀 191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월급 100만~200만 원을 받는 남성은 ‘지금 상황에서는 결혼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61.3%에 달했다. 반면 비슷한 소득의 여성은 53.4%가 결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장씨는 “계산해보니 연봉 인상률 등을 고려하면 8~9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으면 결혼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까지 여자친구가 기다려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점차 불안해지는 고용 환경도 직장인들로 하여금 결혼을 포기하게 만든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6년 발표한 ‘우리나라 장년층의 노동시장 실질은퇴연령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에서 평균 퇴직연령은 49.1세로 2011년에 비해 0.1세 낮아졌다. 취업 연령이 30대 근처로 올라갔으니 평균 퇴직연령이 유지된다 해도 20년 이상 근속은 어렵다. 내 미래를 보장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결혼하고 가족까지 책임진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로 여기는 셈이다.

무역 관련 대기업에 4년째 다니고 있는 권모(31) 씨도 결혼 생각이 없다. 그는 “대기업 직장인도 40대 후반이면 대부분 치킨집 사장님이라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그것보다 더 일찍 퇴직하는 선배들이 수두룩하더라. 당연히 퇴직 이후 인생도 빠르게 설계해놓아야 한다. 그래서 회사 업무 외에도 시간이 나는 대로 ‘빅데이터 분석’ ‘코딩’ 등 수업을 들으러 다닌다. 안 그래도 업무가 많아 평일은 여가 시간이 부족하고 주말은 배우러 다니느라 바빠 결혼 상대를 만나러 다닐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직장인이 연애나 결혼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잡코리아가 직장인 638명을 대상으로 ‘직장인들의 근로시간과 근로시간 단축법에 관한 견해’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직장인의 평균 근로시간은 주당 53.2시간인 것으로 집계됐다. 2월 28일 개정된 근로기준법상 올해 7월부터 직장인은 52시간 이상 근무가 금지된다. 하지만 대다수 직장인은 기업이 생각하는 근로시간은 실제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회사에 있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유통업계 대기업에 3년째 다니는 주모(29·여) 씨는 “해야 할 일의 양은 같은데 근로시간을 줄인다고 회사에서는 8시간 이후 무조건 사무실을 비우라고 한다. 결국 집에 가서도 업무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일이 바빠 시간이 없는 것은 남녀 모두 마찬가지. 하지만 결혼 적령기의 남성이 더 큰 타격을 받았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일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NH투자증권 100세 시대 연구소의 ‘2016 대한민국 직장인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 직장인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9시간, 여성 직장인은 8.2시간이었다. 회식 참여 시간도 남성은 월평균 1.3회, 여성은 0.8회로 소폭 차이가 있었다.

금융계 종사자인 김모(28) 씨는 얼마 전 1년간 만나던 사람과 헤어졌다. 회사 일로 바빠 자주 못 만나니 마음이 멀어진 것. 그는 “회사에 있는 시간은 하루 9~10시간이지만, 실제로 일하는 시간은 12시간이 넘는 것 같다. 집에 가서도 업무 관련 자료 준비나 발표 준비를 하다 보면 자정이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 주말에도 가끔 출근하고, 출근하지 않더라도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잠을 몰아서 잔다. 그리고 남는 시간을 쪼개 연애까지 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여자친구를 만나는 시간을 조금씩 줄였는데 (여자친구는) 이 부분이 많이 섭섭했던 것 같다. 나도 챙기지 못하는데 연애라니, 내 욕심이 과했던 듯하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직 등 고소득층 남성들은 결혼은 하겠지만 30대 후반까지 길게 생각해볼 심산이다. 치과의사 이모(31) 씨도 향후 5년간은 결혼 계획이 없다. 긴 수련 과정을 거쳐 치과의사가 됐고 이제 겨우 공부 외에 자신만의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씨가 최근 관심을 갖는 것은 인공암벽 등반. 시간이 나면 장비를 챙겨 인공암벽장에 가는 것이 요즘 삶의 낙이다.

늦은 밤에도 퇴근하지 못하고 일하는 직장인들. [동아일보]


○ “결혼을 지금 굳이 할 필요가 있나”

연애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틈틈이 지인들을 통해 이성을 소개받고 있다. 괜찮은 사람이 생기면 연애는 하겠지만 결혼은 아직 먼 이야기다. 대학 생활, 병원 생활을 거치며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이제야 비로소 사람답게 살 만한 시간이 생겼으니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즐기고 싶다. 그 후 결혼을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3년 차 회계사인 임모(30) 씨는 결혼이 두렵다. 결혼 생활이 행복하다는 선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이 봤기 때문. 그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결혼한 선배는 보통 수험생 때부터 만나온 여자친구가 있었고 자연스레 결혼까지 이른 경우다. 서로 알아온 기간이 긴 만큼 결혼해도 큰 불협화음이 없는 것 같다. 반면 회계법인에 입사한 후 이성을 만나 빠르게 결혼한 사람은 다툼이 잦다고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사람을 만나 최대한 길게 연애한 후 결혼을 고려하고 싶은데 만난 지 1년만 넘으면 결혼 이야기가 나오니 요즘은 섣불리 연애하기도 꺼려진다”고 밝혔다.

미혼남녀가 결혼을 미루는 가장 큰 원인은 결혼비용이라는 경제적 장벽이지만,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답변도 많았다. 3월 18일 육아정책연구소의 ‘청년층의 비혼에 대한 인식과 저출산 대응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결혼할 의사가 있는 남녀 79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48.5%(복수응답)가 결혼 시기를 늦추는 이유로 ‘소득이 적어서’를 들었다. 하지만 ‘혼자 사는 것이 편해서’라고 응답한 비율도 45.6%에 달했다. 이외에도 ‘아직 결혼하기 이른 나이라고 생각해서’(33.2%)라는 응답도 많았다.

실제로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응답자만 봤을 때 경제적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도 결혼을 미루는 풍조가 짙어지고 있었다. 이 연령대의 응답자가 결혼을 미루는 1순위 이유는 ‘아직 결혼하기 이른 나이라고 생각해서’가 26.4%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은 ‘내 기대치에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21.7%)였다. 경제적 부담은 1순위 선택에서 14.1%로 비중이 낮은 편이었다. 경제적 부담이 높은 위치를 차지한 이유는 2, 3순위 선택에서 각각 응답자 17% 이상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 모든 응답을 합쳐놓고 보면 ‘경제적 부담감 때문’이라는 비자발적 결혼 연기 이유가 많은 편이지만, 응답자가 실제로 결혼을 미루는 가장 큰 이유는 자발적 의사 때문이었다.

5년 차 대기업 직원인 백모(33) 씨는 주위의 잔소리에도 여자친구와 결혼을 미룰 생각이다. 대학에 입학한 20세 때부터 서울에 올라와 13년간 혼자 지냈는데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다. 그는 “여자친구가 3개월 전 취업에 성공했는데 회사가 내 집에서 가까워 평일에는 보통 내 집에서 숙식한다. 여자친구에게 상처가 될까 봐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지금 내 공간을 공유하는 것도 약간 불편하다. 집기 정리부터 자는 시간까지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일단 이렇게 1~2년 지내보고 적응되면 그때쯤 결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볼까 한다”고 털어놓았다.


○ “누굴 만나든 결혼은 안 해”

결혼을 꺼리는 남성이 많아졌다지만 실제로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의사 표명을 하는 경우는 여전히 여성의 비율이 높았다. 육아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남성 응답자 536명 중 ‘결혼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80%, ‘결혼 의향이 없다’는 응답은 20%인 반면, 여성은 ‘결혼 의향이 없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31.1%에 달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결혼 의향이 없다고 응답한 비중 자체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높지만 비혼 의사의 강고함은 오히려 남성이 높을 수 있다’고 봤다. 40대 남녀를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면담에서 비혼 의사를 표현한 남성은 ‘생각을 바꿀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지만, 여성은 결혼할 의사가 없다고 응답한 뒤에도 ‘좋은 사람이 생기면 결혼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한 상태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

30대 비혼자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30대 남성 중 결혼 의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비혼자는 27.7%이고, 30대 여성은 26.4%로 소폭 낮았다. 반면 결혼 의향이 없었지만 생겼다고 응답한 비율은 남성 21.1%, 여성 24.1%로 여성이 조금 높았다. 남성들이 결혼을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 부양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30대 비혼 남성의 46%가 가족 부양 부담을 비혼 이유로 꼽은 것이다. 같은 응답을 한 비혼 여성은 31%에 불과했다.

자영업자 신모(33) 씨는 “어릴 때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면 굳이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신씨가 아버지를 보면서 비혼을 결심한 이유는 아버지에게 실망했기 때문이 아니다. 신씨의 아버지는 전문직 종사자라 수입이 안정적이었고, 가족에게도 충실했다. 그는 “아버지와 비슷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갖추고 보니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하면 가장 행복한 순간 삶의 궤적이 아버지의 모습과 비슷할 테고, 결혼을 포기하면 훨씬 더 쾌적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버지 세대는 연애 등이 일반화돼 있지 않아 선택지가 많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결혼하지 않고 연애만 하면서 사는 편이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 결국 답은 결혼 포기?

결혼인구가 줄어들면 들수록 출산율도 함께 낮아진다. 지난해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혼외출산 비율은 1.9%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사실상 결혼해야만 자녀를 낳을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한 것이다.

그렇다면 저출산에 시달리던 해외 선진국은 어떻게 출산율을 높였을까. 프랑스, 노르웨이, 벨기에, 미국, 호주 등 유럽 및 영미권 선진국은 혼외출산을 저출산의 탈출구로 봤다. 그래서 동거, 한부모 가정 등 비혼 가정에도 법적 부부와 동일한 양육 혜택을 주기 시작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비혼 동거 커플 증가와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 브리프에 따르면 혼외출산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프랑스는 1990년대 PACS로 비혼 동거 커플을 인정하고 이들에게도 법적 부부와 같은 양육 지원을 해왔다. 그 결과 1990년 1.76명이던 합계출산율도 2009년 2명에 도달했다.

이에 한국 정부도 동거 부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8 경제정책방향’에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동거 부부 차별 해소책이 담겼다. 1월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상반기 내 동거 부부와 법적 부부의 차별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해소할 방안을 위한 연구용역을 실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은 차갑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기를 낳는 것이 익숙지 않기 때문.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낙태되는 태아만 줄여도 한국 합계출산율이 유의미하게 오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혼외출산에 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하지만 그 전에 출산에 대한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출산율은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혼외출산 인정에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사실 PACS가 큰 인기를 누린 것은 이혼 리스크를 줄였기 때문이다. 결혼한 프랑스 부부는 재산권, 상속권 등을 보장받는다. 공동의 노력으로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는 이혼할 때 각자 몫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PACS 커플의 경우 이 같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공동소유로 등록한 재산이 아니라면 자기 재산을 처분할 때 상대방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상속권과 연금 승계 조항도 없다. 커플 중 경제력이 더 있는 상대에게 상당히 유리한 제도인 것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한국에 PACS 제도를 도입한다고 출산율이 오를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프랑스에 동거 관련 제도가 생긴 이유는 동거 커플이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동거 자체가 금기시되는 문화권에서는 출산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오히려 미혼 부모도 아이를 버리지 않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편이 출산율 상승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8년 113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