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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폴란드 공화국의 총리가 된 피아니스트

입력 | 2018-03-27 03:00:00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

한 세기 전인 1918년 막을 내린 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 전체에 큰 비극이었지만 몇몇 유럽 민족들에는 독립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핀란드,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새롭게 자신들의 역사를 써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종주국들이 백기를 들고 항복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억압받던 민족들의 독립 운동가들이 전쟁 전부터 전 세계에 치열한 독립의 호소를 전했기에 가능했을 일입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주권을 빼앗기고 자신들의 문화를 억압당하며 살았던 이 민족들에 대해 세계인들이 아는 것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습니다. 교향시 ‘핀란디아’ 등으로 알려진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신생 핀란드 공화국의 ‘국가적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3S’ 즉 시벨리우스, 사우나, 시수(지혜가 깃든 용기)를 알면 핀란드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독일이 나눠 점령하고 있었던 폴란드의 독립은 핀란드보다 어려웠습니다. 세계인이 폴란드에 대해 가장 뚜렷이 알고 있는 건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고국’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폴란드 출신으로 쇼팽을 가장 잘 연주한 피아니스트가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1860∼1941)였습니다. 쇼팽 연주가로 얻은 명성을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한 호소에 사용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을 찾아가 폴란드의 독립 필요성을 역설했고, 감명을 받은 윌슨 대통령은 자신이 발표한 전후 ‘14개조 평화원칙’에 폴란드의 독립을 명시했습니다. 1918년 폴란드가 독립하자 파데레프스키는 단 두 달 재임한 옝제이 모라체프스키 초대 총리에 이어 신생 폴란드 공화국의 두 번째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가 생활도 길지는 않았습니다. 열 달 뒤 피아니스트로 돌아가 미국과 유럽에서 쇼팽 작품을 비롯한 폴란드 음악과 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데 다시 나섰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8일 독주회를 갖는 미국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는 소나타 3번을 비롯한 쇼팽 작품들과 소나타 E플랫단조를 비롯한 파데레프스키의 작품들을 연주합니다. 그는 1990년 제12회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에서 최고 점수로 1위 없는 2위를 수상한 바 있습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