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 사회부 차장
그로부터 며칠 뒤 사무실로 찾아가 그분을 만났다. 조심스레 전화를 못 받을 사정이 있었는지 여쭤보았다. 그분은 “유력 정치인과 대기업 등을 담당하는 부패사건 전담 형사부를 맡은 뒤로는 가족 외에는 휴대전화 통화를 안 한다”고 설명했다. 부속실을 거치는 구내전화는 통화한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 수 있지만 휴대전화는 그렇지 않아서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취지였다. 그는 형사재판을 할 때는 학교 동문 모임도 안 나간다고 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평소 꽤 가깝다고 생각했던 분이라 조금 서운한 감정도 들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그 부장판사는 대법관이 됐다. 대법관이 된 후에도 그분은 언론이 관심을 가질 법한 민감한 사건을 맡으면 휴대전화를 받지 않는다. 어쩌다 한 번 연락이 닿으면 “퇴임하면 편하게 만나자”며 미안해하신다. 그분은 분명히 취재원으로는 빵점짜리다. 하지만 국민으로서는 그런 분이 공직에 계신 건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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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법조계 고위 인사는 이런 상황이 “공직자가 처신의 기본인 ‘원, 투, 스리’ 원칙을 못 지켜서 그렇다”고 분석했다. 그가 설명한 ‘원, 투, 스리’ 원칙의 첫 번째는 여자는 아내 한 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배우자) 외에 다른 이성을 마음에 두면 일에 소홀해지고 은밀한 사생활을 지키려고 부정한 재물에 손을 대거나 권한을 엉뚱하게 휘두르며 타락하기 쉽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런 예를 숱하게 알고 있다.
두 번째 원칙은 공직자는 친한 친구를 둘 이상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직자의 본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공명정대하게 행사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사정을 봐줘야 할 친구가 많은 마당발이 좋은 공직자가 되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 원칙은 후배를 셋은 키워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사람을 만들어 요직에 심으라는 뜻이 아니다. 인품과 실력을 두루 갖춘 후배를 교육하는 데 힘쓰라는 의미다. 공직 역시 다른 민간 영역과 마찬가지로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낼 수는 없다. 뜻을 함께하는 훌륭한 후배가 필요하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두려울 만큼 투명해지고 비밀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대과(大過) 없이 공직을 마무리하는 것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여자 하나, 친구 둘, 후배 셋.’ 쉽지 않은 기본을 지키는 일은 그래서 더 중요해졌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