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창업가 기사는 요란해도 실리콘밸리 성공한 기업가는 평균 47.2세에 회사 시작해 기업에 성공한 사람일수록 일반인보다 위험 회피적… 실패 줄이려 갈고닦은 것
이정동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이런 40세 직장인이 흥미를 가질 만한 자료가 작년 미국의 한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연구 질문은 단순하다. 창업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는 평균 몇 살에 창업하는 것일까? 260만 개 이상의 창업기업 자료를 분석한 결과 뜻밖에도 창업할 때의 평균 나이는 41.9세였다. 하이테크 분야는 43.2세로 더 많았다. 실리콘밸리라고 다를 게 없었다. 41.5세였다. 성공한 창업가들만 따로 뽑아서 보았더니 46.7세였고, 놀랍게도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창업가들은 무려 47.2세에 회사를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생태계를 채우는 사람들은 마크 저커버그나 청년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알고 보니 귀밑머리가 희끗해지고, 배가 나오기 시작한 40대 중년들이라는 얘기다.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실리콘밸리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다.
그 답은 기업가정신의 ‘구루’(정신적 지주)로 평가받는 피터 드러커의 얘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드러커는 한 강연에서 자신이 만나본 성공한 기업가들이 모두 일반인보다 훨씬 더 위험 기피적이라는 의외의 언급을 했다. ‘죽기밖에 더하겠느냐’는 심정으로 말도 안 되는 위험을 감수하는 놀라운 창업가들의 이야기가 알고 보면 모두 착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평균 47세에야 창업한다는 실리콘밸리의 통계나 성공한 기업가들이 훨씬 더 위험 기피적이라는 통찰 모두 상식에 반(反)하지만, 두 이야기를 연결해서 해석해 보면 묘하게 말이 된다.
마음속에 무언가 자신만의 꿈이 있었으나 처음부터 성공이 눈에 보였던 것은 아니다. 기획은 아직 채 여물지 않았고 경험이나 준비한 자원이 적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도 우리처럼, 오히려 우리보다 더 실패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실패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47세가 될 때까지 갈고닦으며 기술과 인적 네트워크 등 유무형의 자원을 차곡차곡 준비했던 것이다.
설익은 아이디어지만 무모한 도전의식과 젊음에 기대 창업에 도전했던 위험선호 성향의 기업가들은 착시를 일으키는 극소수의 성공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 무대에서 사라졌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기업가는 평균 47세에 창업한다’는 통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림이다.
기업가정신이라는 구호에 따라 무작정 위험을 감수한 채 뛰어들라고 부추기는 것은 옳지 않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위험 자체를 좋아할 수 없다. 실패 가능성을 가능하면 줄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며 미리 준비할 따름이다. 이 준비에 걸리는 시간이나 방법이야 각자 다르겠지만, 테스트하고 배우면서 쌓아가야 하는 원리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의 40세 직장인은 실리콘밸리의 청년들에 비추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자괴감에 빠져 있다. 아니다. 착시일 뿐이다. 47세라는 수치를 다시 되새겨야 한다. 내 이름이 찍힌 나만의 사업기획서를 마음속에 품고, 오늘 하루도 실패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테스트하고 축적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 이런 생각을 품고 출근길에 오른 마흔의 당신은 이미 기업가다.
이정동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