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친고죄 폐지前 범행 처벌 추진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나올 수도 있고 다른 법률을 적용할 여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의혹 해소 차원에서 형사 처벌 여부와 상관없이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의 이런 방침은 상습강제추행죄가 신설되기 전에 발생한 강제추행 범죄도 적극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여성 단원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66)에 대해 긴급 출국 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 2010년 4월 이전 성범죄도 유의미
광고 로드중
예를 들어 2010년 4월 15일 이전에 여러 건의 성추행이 있었고, 그 이후에 한 건의 성추행이 있는 경우 법 시행 이후 범죄만으로는 한 건밖에 되지 않아 상습강제추행으로 처벌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법 시행 전에 일어난 여러 건의 범행과 하나로 묶인다면 상습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는 게 검경의 판단이다.
이 전 감독은 2010년 이전에 10여 건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고 2012년 10월 배우 김수경 씨(36·여)를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온 상태다. 2010년 이전에 발생한 범죄는 여러 건 일어났더라도 그 자체로는 처벌을 하지 못하지만 2012년 폭로된 성추행과 연결되면 상습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커진다. 배우 조민기 씨(53)는 2011년 이후 여러 건의 성폭력 및 성희롱 신고가 나와 상습적일 가능성이 있다. 그 자체로는 죽어 있는 사건인 2010년 4월 15일 이전에 일어난 강제추행 범죄를 그 이후에 일어난 것과 연결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상습강제추행 정황을 법원에 제출해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데 활용할 방침이다.
2010년 4월 15일 이후부터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된 2013년 6월 19일 사이에 일어난 성범죄는 친고죄 조항 때문에 사건 발생 후 1년 안에 고소를 해야 수사를 할 수 있는 제약이 있었다. 단순 강제추행으로는 고소가 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처벌이 어렵지만 상습적으로 일어난 성범죄라면 상습강제추행으로 처벌할 수 있다.
○ 이윤택 피해자들 눈물의 기자회견
광고 로드중
피해자들과 함께한 변호인단은 공소시효를 없애고 소급 적용이 가능한 이른바 ‘이윤택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성범죄의 공소시효는 현재 10년이다.
변호인단의 대표로 나온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 변호사는 “위안부 피해로 성범죄에 트라우마가 있는 곳이 우리나라다. 공소시효, 친고를 따지며 성범죄를 처벌하지 못하면 어떻게 일본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겠나”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 등 101명의 변호사와 여성단체들은 이달 초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피해자 변호에 나섰다.
한편 영화배우 한재영에 대한 성추행 의혹도 나왔다. 연극배우 출신인 박모 씨는 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극단 신화 대표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고민을 털어놨더니 극단 선배였던 한재영이 ‘나도 너랑 자고 싶다. 모텔을 가자’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한 씨는 5일 소속사를 통해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다. 앞으로 저 자신을 깊이 되돌아보며 반성하며 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이지운·김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