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쇼트 ‘러시아 집안싸움’
“프리서 역전”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가 21일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연기에 몰입하고 있다. 이날 메드베데바는 81.61점을 기록해 알리나 자기토바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강릉=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메드베데바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28번째 순서로 같은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인 알리나 자기토바(16)가 등장했다. 메드베데바의 녹턴과 달리 영화 ‘블랙스완’의 강렬한 리듬에 맞춰 연기를 펼쳤다. 점수가 뜨자 자기토바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뚫어져라 전광판을 쳐다봤다. 82.92점으로 자신의 종전 최고기록(80.27점)을 넘어 메드베데바가 20분 전에 갈아 치운 세계기록을 다시 깨뜨렸다.
한 경기에서 두 차례 세계기록이 나올 만큼 두 피겨 스타의 경쟁이 초반부터 후끈 달아올랐다. 21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자기토바가 1위, 메드베데바가 2위에 올랐다.
미국 남자 피겨 선수로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 출전했던 제러미 애벗(33)은 “자기토바는 견고했다.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 점프 콤비네이션 점프는 절을 할 정도다”고 평가했다. 이어 “메드베데바는 어떻게 스케이트를 타는지 잘 알고 있고, 일관성 있는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전 여자 피겨 선수 안도 미키(31)는 “메드베데바는 첫 점프의 움직임이 평소보다 딱딱한 느낌이지만 집중력은 좋다”며 “자기토바는 콤비네이션 점프는 정말 최고다. 스케이팅도 몸에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좋은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두 선수는 23일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은반 여왕의 자리를 놓고 정면 승부를 펼친다. 빙판에서는 경쟁자이지만 빙판 밖에서는 친근한 사이라고 두 선수는 밝혔다. 자기토바는 “밖에서는 좋은 관계다. 다만 훈련 때는 솔직히 경쟁심이 일어난다”며 “당연히 악감정은 아니다”고 말했다. 메드베데바도 “서로 걱정하는 것을 공유할 정도로 친한 친구다. 오늘 자기토바의 무대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며 “스포츠는 스포츠다. 경기장에 나가면 자신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게 우리의 삶이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여자 싱글에서는 팝송을 배경음악으로 선택한 선수가 많아 눈길을 끌었다. 아이스댄스에서만 가사 있는 배경음악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번 올림픽부터 남녀 싱글은 물론이고 페어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2014∼2015시즌부터 바뀐 규정이지만 올림픽에는 이번이 처음이다.
강릉=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