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펜스 회동 불발]南-北-美 40여일간 무슨 일이
청와대 핵심 참모들은 김여정이 돌아간 뒤 주변에 “남북 대화가 결국은 북-미 대화와 같이 가야 하고, 거기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새해 벽두부터 평창 올림픽 개막까지 40여 일 동안 한미, 그리고 북한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 북-미 대화 중재 나선 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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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연합훈련 연기에 북한은 지난달 9일 남북 고위급회담을 위해 판문점으로 나왔고, 평창 올림픽 참여 의사를 밝혔다. 다음 날 한미 정상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평창에 파견할 미 고위급 대표단장으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미 대표가 결정되자 청와대는 북한 설득에 나섰다. “펜스 부통령의 격에 맞는 최고위급 인사가 와야 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전달한 것. 지난달 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측 고위급 대표단장으로 북한 2인자인 최룡해 당 부위원장이 방남하느냐는 질문에 “최룡해면 높은 인사가 오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이미 김여정 또는 북한 헌법상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남을 요청했던 것이다.
○ “청와대, 10일 오후”까지 합의했는데…
문 대통령은 2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미 대화를 본격적으로 타진했다. “김여정의 방남 가능성이 크다”는 청와대의 설명에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들과 회의를 거쳐 대화 추진을 결정했다. 백악관은 청와대에 “펜스 부통령이 가니 (대화를) 잘해보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펜스 부통령이 방한 직전 “무슨 일이 있을지 보자”고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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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 압박’ 강조한 펜스에 北, 최종 거부
하지만 북-미 대화는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8일 방한한 펜스 부통령은 탈북자들을 만나고 천안함을 둘러보는 등 대북 압박 행보를 이어갔다. 한 외교 소식통은 “백악관은 북-미 대화에서 강경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던 것 같다. 펜스 부통령의 행보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9일 개막식에서 뒷줄에 앉은 김여정 김영남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에 북한은 10일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조용히 사라지는 게 좋을 것”이라며 펜스 부통령을 맹비난했다. 이와 관련해 미 워싱턴포스트는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회담에 응하겠다던 북한이 2시간 전 돌연 일정을 취소했다”고 21일 보도했다. 북한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문 대통령과의 회동 및 오찬에서 취소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급해진 문 대통령은 10일 오후 예정에 없던 강릉행을 결정했다. 펜스 부통령과 쇼트트랙 경기를 보며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한 설득에 나선 것.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탐색적 대화라도 해볼 것을 권했고, 관전이 끝나고 귀국길에 오른 펜스 부통령은 “북한이 원하면 대화에 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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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준 alwaysj@donga.com·문병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