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의혹이 잇따라 폭로된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그 회견마저 리허설을 거친 ‘연극’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연희단거리패 배우인 오동식 씨에 따르면 이 전 감독은 마지못해 회견에 나서며 주요 단원들과 사전 연습을 했다. 변호사에게 자문한 뒤 성폭행 사실에 대해선 부인하기로 하고, 불쌍한 표정까지 연습했다는 게 오 씨의 주장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을까 일말의 기대로 회견을 지켜봤던 피해자들은 또다시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지방대 교수 재직 당시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배우 조민기 씨의 대응도 실망스럽다. 조 씨는 캠퍼스 인근에 마련한 오피스텔로 학생들을 불러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 씨는 소속사를 통해 “명백한 루머”라고 반박하다가 구체적인 피해 증언들이 이어지자 그제야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로 드러난 문화계의 성폭력은 ‘문화 권력’의 추악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문화계는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창작을 위한 ‘자유로운 영혼’을 강조하면서도 현장에서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했던 탓이다. 권위와 명성을 가진 소수 인사가 ‘왕’처럼 군림하며 문제 제기도 쉽지 않은 구조였다. 특히 ‘이윤택 파문’으로 대표되는 연극계 사건은 ‘권력관계에 기반을 둔 폭력’이라는 성폭력의 본질을 명확히 드러냈다. 특유의 도제 시스템과 맞물려 이른바 ‘가난하고 배고픈’ 연극인 지망생들의 꿈과 미래를 담보로 오랜 기간 무시로 성폭력을 일삼은 ‘괴물’이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