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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남북 정상회담 질문에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격”

입력 | 2018-02-19 03:00:00

남북대화 속도조절 시사




쇼트트랙 응원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7일 강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선에서 최민정이 금메달을 따자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김 여사는 직전까지 문 대통령 왼팔을 껴안고 조마조마해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강릉=청와대사진기자단

“우리 속담으로 하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강원 평창 메인프레스센터(MPC)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제안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보다 북핵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북-미 대화가 우선되어야 하며 그전까지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속도조절론’을 분명히 한 것이다.

○ “북-미 대화 나서야 정상회담 가능” 메시지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할 생각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마음이 급한 것 같다”며 속담을 꺼내들었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부터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받은 지 일주일 만에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태도를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 속담을 인용한 것은 김여정의 평양 초청 제안에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8일 “일각에서는 6월, 8월 등 정상회담의 구체적 시기까지 거론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은 신중하다. 북-미 대화 진전 없이는 어떤 후속 조치도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시에 문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는 김여정이 평양으로 돌아간 뒤 일주일 동안 미국과 다양한 채널로 소통한 결과 어떤 형태로든 북-미 접촉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17일(현지 시간) “(국무장관으로서) 나의 일은 우리가 채널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을 북한이 반드시 알도록 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나에게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기를 귀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이 아무리 워싱턴에서 대북 온건파라 하더라도 이는 ‘코피 작전’이 거론되던 최근 워싱턴 기류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맞춰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싸늘한 대북 스탠스에 우려하던 청와대는 틸러슨 장관의 발언을 주목하고 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도 미국에 돌아가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며 “북한과 미국이 한 번에 마주 앉기는 어렵지만 서서히 접촉과 대화로 돌아서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김정은, 열병식 이어 김정일 생일에도 ‘로키’

이 때문에 정부에선 북-미가 곧 ‘탐색적 대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미는 김정은의 도발이 이어지던 지난해 말에도 비공식 채널을 유지해 왔다”고 전했다. 정부 안팎에선 북-미 간 접촉이 시작된다면 시점은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이 끝나고 한미 연합 군사훈련(4월) 시작 전인 3월 초·중순이, 장소는 유엔본부를 중심으로 한 뉴욕 채널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김정은 역시 ‘로키(low key)’ 행보를 이어가며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고 있는 형국이다. 김정일 생일 하루 전인 15일 열린 ‘김정일 생일 76돌 중앙보고대회’에 김정은은 지난해와 달리 불참했고 최룡해 당 부위원장이 대회를 주도했다.

평창 개회식 전날인 8일 건군절 열병식에 새 전략무기를 선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미국을 의식해 수위 조절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전에는 김정일 생일 전후 도발을 이어간 것과는 달리 잠잠한 것도 눈에 띈다. 지난해엔 2월 12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북극성-2형을 발사했고 2016년 2월 16일엔 장거리미사일 광명성호를 발사하며 미사일 전력을 과시했다.

우리 군 역시 최근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김정은 체제 비판보다는 평창 올림픽, 김여정 방남 소식 등을 주로 소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확성기는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전략 심리전 수단이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신진우·황인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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