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사회지도층 편법증여 적발
전직 교사 A 씨는 서른이 되도록 ‘백수’ 신세인 아들이 늘 걱정이었다. 궁리 끝에 서울 강동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를 아들 명의로 매입했다. 은행 대출로 샀지만 대출금을 모두 A 씨가 갚아 아들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 재산을 무상으로 이전한 불법 증여를 한 것이다. A 씨와 그의 아들은 이 아파트를 되팔아 수억 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뒤 다른 재건축 아파트를 매매하다가 국세청에 적발됐다.
○ 탈세자금으로 부동산 산 공무원
국세청은 12일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서 재산도 많은 기득권층의 탈세 유형 10건을 공개했다. 이는 국세청이 지난해 8월 이후 지난달까지 부동산 세무조사를 실시해 탈세 혐의자 1375명중 633명을 적발한 결과의 일부다.
현행법상 부자(父子), 모자(母子) 관계라도 10년에 5000만 원이 넘는 현금이 오가면 국세청 신고 후 증여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A 씨 사례처럼 기준을 넘어서는 증여를 하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부유층이 한둘이 아니다.
현직 고위 공무원인 60대 B 씨도 이번 부동산 세무조사에 적발되면서 수억 원의 세금을 내게 됐다. 그는 음식점을 하는 아들에게 돈을 줘 상가를 사도록 했다. 아들은 이 돈을 밑천 삼아 자신이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보태 상가 건물을 사들였다. 하지만 국세청 조사 결과 B 씨가 건넨 돈은 증여세 미신고, 아들이 보탠 돈은 사업소득 미신고 자금이었다.
○ 부동산 통한 ‘부의 대물림’
대형 로펌 변호사인 50대 C 씨는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20대 딸에게 돈을 건네 집을 사도록 했다. 딸은 아버지 돈으로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를 산 뒤 서울 강남구 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했다. 부동산 중개 비용은 어머니가 댔다. 단속에 적발된 이들에게는 수천만 원의 증여세가 부과됐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전문 탈세범에 버금가는 수법을 쓴 경우도 있다. 60대인 대기업 임원 D 씨는 아들 둘에게 각각 서울 서초구 아파트를 사 줬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두 아들이 자신의 동생으로부터 돈을 빌려 집을 산 것처럼 꾸몄다. 친인척 사이에 차용증을 쓴 것처럼 서류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국세청의 금융 추적 결과 주택 구입 자금은 모두 아버지 D 씨의 돈이었다.
유망 기업인도 부동산을 동원한 편법 상속에 가담했다. 지방의 잘나가는 기업 사주 E 씨는 아들을 자신이 세운 기업 대표로 앉히고 수억 원을 양도해 땅을 사들이도록 했다. 이들은 토지 담보 대출을 받았지만 이자를 모두 E 씨가 갚았다. 증여세는 내지 않았다. 이들에게도 수억 원의 증여세가 추징됐다.
이번 조사를 총괄한 이동신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부동산을 부의 편법 세습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는 앞으로도 꾸준히 단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