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효준이 결국 해냈다. 개막 이튿날인 10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펼쳐진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개최국이자 쇼트트랙 최강인 한국에 대회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숱한 부상과 그에 따른 역경을 ‘평·창·올·림·픽’이라는 다섯 글자만을 가슴에 새긴 채 묵묵히 극복한 결과이기에 더욱 값지다. 임효준이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한 뒤 포효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평·창·올·림·픽’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대형 스포츠 이벤트일 수 있지만, 임효준(21·한국체대)에게 그 다섯 글자가 주는 의미는 엄청났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우승으로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선사한 그에게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을 묻자, 임효준은 “평창올림픽”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글자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서 말이다.
● 유스올림픽 1000m 우승, 그 기쁨도 잠시…
남자 쇼트트랙대표 임효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대표선발전 1위, ‘임효준 시대’의 서막
숱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평창올림픽 무대에 서겠다는 각오 하나로 모든 것을 걸었다. 전체 1위로 2017~2018시즌 국가대표선발전을 통과하며 평창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을 따냈고,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1차대회(헝가리 부다페스트) 1000m와 1500m에서 금메달, 5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존재감을 각인했다. 체격이 작지만, 폭발적 스피드를 앞세워 아웃코스를 추월하는 기술이 일품이었다. 몸집이 큰 유럽 선수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이는 꾸준한 훈련을 통해 힘을 키운 덕분이다. 상대 선수와 동선이 겹치는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자리를 잡는 기술이 바로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남자 쇼트트랙대표 임효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또 하나의 적, ‘긴장감’을 이기다!
쇼트트랙은 변수가 많은 종목이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경기 당일의 컨디션과 빙질, 상대 선수의 전략에 따라 순위가 바뀔 수 있다. 특히 결승에선 1위로 달리다가 다른 선수가 마음먹고 반칙을 감행해 넘어지더라도 구제받을 수 없다. 반칙을 저지른 선수가 실격을 당해도 넘어진 선수의 본래 순위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멘탈(정신력)도 중요한 요소다. 임효준은 1500m 경기 당일까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긴장이 풀린 순간은 예선 직후였다. “예선 들어가기 전에는 정말 많이 떨렸는데, 오히려 통과하고 나니 긴장이 많이 풀렸다. 다른 선수들이 타는 모습을 보니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남자 쇼트트랙대표 임효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평·창·올·림·픽’ 다섯 글자의 무게감
7번의 수술. 빙판에서 모든 힘을 쏟아내야 하는 쇼트트랙 선수로선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효준은 모든 악재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세계 정상에 섰다. 그 배경이 궁금해 질문을 던졌다. “내게는 명확한 꿈이 있었다. 평창올림픽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고, 금메달을 따고 싶었다. 평창올림픽만 생각하며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임효준은 ‘우승을 확정한 직후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는 “오히려 월드컵 1차대회에서 우승했을 때가 더 기분이 좋았다”는 말부터 했다. 그토록 기다려온 임효준의 평창올림픽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선전포고로 들렸다. “아직 경기가 끝난 게 아니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잘 준비해서 끝날 때 웃겠다. 무엇보다 22일에 열리는 5000m 계주에선 꼭 금메달을 가져오고 싶다. 죽을 각오로 하겠다.” 만족을 모르는 사나이의 말에는 큰 울림이 있었다.
● 임효준
▲키·몸무게=168cm·65kg
▲출신교=계성초∼오륜중∼동북고∼한국체육대학교
▲주요 성적=2012년 제1회 동계유스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금메달, 2017∼2018시즌 ISU 쇼트트랙 월드컵 1차대회 1000·1500m 금메달
▲세계랭킹=남자 1500m 4위, 남자 1000m 6위
강릉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