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혁 경제부 기자
정부가 도입한 거래실명제가 큰 역할을 했다. 가상통화 시장으로의 진입을 막는 사실상의 규제 역할을 하며 신규 자금이 거의 유입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벌어진 가상통화 해킹, 가상통화를 노리는 북한의 움직임 등도 구매 심리를 위축시켰다.
일각에서는 큰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가상통화 급등세에 휩쓸려 설익은 대책을 쏟아낼 필요도 없어졌다. 조세당국 관계자는 “가격이 떨어지고 시장 참여자가 줄면서 정부가 좀 더 세밀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말했다.
가상통화 구매자의 60%를 차지하는 20, 30대 젊은층 사이에서는 가상통화 대박 신화가 흔들림 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들은 “가상통화 상승기가 반드시 또 온다. 이때는 정말 전 재산을 쏟아부어 돈을 벌겠다”며 각오를 다지는 중이라고 한다. 해외 거래소 이용법을 숙지하고 계좌를 개설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이들은 가상통화 가격이 하루에 두 배, 한 달에 10배 이상 올랐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가상통화로 원금을 잃고 스스로 목숨까지 내던진 누군가의 비극보다 몇 달 만에 몇 백만 원을 수십억 원으로 불렸다는 달콤한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헤매고 있는 듯하다. 기획재정부와 국무총리실 중 누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지 몇 번이나 말이 바뀌었다. 과세 방침은 확정된 게 없다. 가상통화 가격과 거래량이 줄면서 정부 정책의 난맥상이 수면 아래로 들어가 잠시 보이지 않을 뿐 달라진 건 없다.
국민은 가상통화 가격의 폭등 과정을 겪으며 갈팡질팡하는 정부에 큰 불신을 갖게 됐다. 가상통화 열풍이 잠시 가라앉은 지금이야말로 정부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제대로 된 대책을 궁리해야 한다. 손놓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이건혁 경제부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