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수건 적셔 코입 막고 몸 낮춰 대피

입력 | 2018-02-09 03:00:00

[알아야 지킨다, 족집게 '생존 수칙']<4> 유독가스 속에서 대피 체험




7일 본보 김동혁 기자가 오른팔로 코와 입을 막은 채 비상구를 찾아가는 화재 대피 훈련을 하고 있다.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갑자기 정전됐다. 문틈 사이로 흰색 연기가 들어왔다. 화재 상황을 연출한 훈련인데 실제와 구별되지 않았다. 훈련 전 “일반인 체험 때보다 3배 이상 연기 농도를 높여 달라”고 요청했다. 눈앞이 10초 만에 뿌옇게 변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연기 사이로 비상구를 안내하는 ‘피난유도등’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무작정 불빛을 따라갔다. 더듬더듬 연기 속을 걸어가며 생각했다.

‘진짜라면 꼼짝없이 죽을 수 있겠구나.’

7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소방재난본부 보라매안전체험관. 2015년 시민의 안전을 위해 설립됐다. 이날 기자는 지하 1층 지하철 사고 체험관에서 연출된 화재 상황에 따라 대피훈련을 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후 지하철 내 대피 상황을 가정해 만든 공간이다.

지하철 내부가 화재와 함께 정전되면 비상문을 열고 복도를 통해 외부로 탈출해야 한다. 안내를 맡은 김보라 소방관(33·여·소방교)은 “안내는 따로 하지 않을게요. 혼자 힘으로 한번 대피해 보세요”라고 말했다. 친절한 안내였지만 기자에게는 ‘냉정하게’ 들렸다.

뿌연 연기 사이로 보이는 피난유도등은 주로 아래쪽에 있다. 성인 남성 기준 허벅지 높이(바닥에서부터 약 70cm)다. 자세를 낮추고 대피할 때를 위해서다. 화재와 함께 번지는 유독가스는 위쪽에서부터 차기 시작한다. 66m²를 기준으로 할 때 20초 정도면 연기가 성인 남성이 똑바로 섰을 때 키 높이까지 내려온다. 자세를 낮출 경우 아래 공간에 남아 있는 공기로 호흡하며 1분가량 더 버틸 수 있다. 뒤쪽에 서 있던 김 소방관은 “자세를 낮추고 벽을 짚으며 대피하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10배 이상 높이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무작정 허리를 숙인 채 엉거주춤 걸어가던 기자에게 김 소방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코와 입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옷을 벗어 막거나 여의치 않으면 오른쪽 팔소매 부분으로 입을 가리라고 지적했다. 시키는 대로 오른팔을 입으로 가져간 뒤 구불구불 이어진 40m가량의 복도를 빠져나왔다. 약 1분이 걸렸다.

이날 훈련에서는 수증기 안개를 뿜어내는 기계를 사용했다. 실제 화재 때 발생하는 유독가스와는 차이가 있다. 이후 용산소방서에서 이어진 훈련에서는 종이에 휘발유를 뿌린 뒤 태웠다. 수증기 안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독성이 느껴졌다. 종이 타는 연기를 코 가까이 대고 살짝 맡았는데도 3초 만에 눈물이 나면서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옆에 있던 소방관이 건넨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눈은 여전히 따가웠지만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다. 수건을 물에 적셨더니 더 나아졌다. 소방 전문가에 따르면 젖은 옷가지로는 최장 5분간 생존이 가능하다.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와 지난달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희생자는 대부분 유독가스 때문에 발생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스티로폼 등 내장재가 타며 뿜어내는 현장의 유독가스는 한 번만 들이마셔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연기 온도가 200도 가까이 올라 호흡기 화상도 입는다.

대피로로 가장 적합한 곳은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건물 뒤편의 비상구다. 화재 시 주 출입구는 건물 내 모든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이다. 이곳은 사람이 몰려 오히려 대피가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영화관 등 처음 보는 공간에서는 사전에 비상구 위치를 점검해 두면 머릿속에 잔상이 남아 피난유도등을 따라가기 쉽다. 회사원 신모 씨(39)는 “딸과 함께 영화관이나 호텔을 가면 직접 비상구 문을 열어 보기도 하고 눈을 가린 채 걸어가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본보 기자가 만난 소방관들은 화재를 초기에 잡는 데 실패하면 즉각 현장을 떠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직 연기가 차기 전이기 때문에 빨리 비상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용산소방서 전민호 소방관(37·소방교)은 “연기가 내부에 찼다면 자세를 낮추고 코와 입을 막은 뒤 비상구를 따라 대피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기본을 지키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라고 말했다.



김동혁 hack@donga.com·권솔 기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