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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인 컬처]‘가상통화소녀’ 이어 ‘.........’ 어안벙벙 아이돌

입력 | 2018-02-01 03:00:00

일본은 지금 별난 아이돌 세상




일본 아이돌은 빠르게 도는 경제 시스템과 환상 사이에 존재한다. ‘.........’(다츠 도쿄·첫번째 사진)는 비트코인에 인장을 남겼고, ‘가상통화소녀’(두번째 사진)는 비트코인을 춤에 형상화했다. 히라기 리오(마지막 사진)는 팬들에게 “신앙! 경배! 순례! 헌금! 기도!”를 따라 외치라고 하는 등 교주처럼 무대를 꾸민다. 사진 출처 각 그룹 홈페이지·영화 ‘도쿄 아이돌스’ 화면 캡처

‘가상통화소녀.’

요원 7(임희윤)은 뉴스 화면에 뜬 여섯 글자를 보고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저게 진짜 신인 아이돌그룹의 이름이라니. 그들은 가면을 쓴 채 하트 대신 코인 모양을 손으로 그려내며 해맑게 춤을 추고 있었다.

걸그룹 ‘가상통화소녀’는 실재했다. 지난달 일본에서 데뷔해 쇼 케이스를 열자마자 세계가 들썩였다. 일본 매체들은 물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까지 앞다퉈 보도했다. 멤버마다 각각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가상통화를 상징하는 가면을 쓰고, 활동에 따른 급여도 가상통화로 받는다. 팬들은 음반이나 관련 상품을 가상통화로 결제해야 구매할 수 있다. 만화 같은 스토리에 입을 다물지 못하던 차, 인터넷 공간에서 또 다른 경이를 발견했다.

‘………’

할 말 없단 얘기가 아니다. 걸그룹 이름이다. ‘………(점 9개)’는 속칭 ‘다츠(dots·점들) 도쿄’라 불리는 그룹이다. 멤버 이름은 모두 ‘.’로 통일. 선글라스 등으로 얼굴을 가려 멤버를 분별할 수 없다. “손에 닿는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아이돌이란 개념이 팽배한 가운데, 우리는 되레 멤버의 개성을 벗겨내고 거리감을 추가해 아이돌을 다시 신적인 존재로 만들고 싶었다.” 이들이 밝힌 포부에 7은 그저 “… ….” 이것은 대중음악 세계에도 차가운 0과 1의 미학을 주입해 인류문명을 고사시키려는 외계인의 음모인가? 조사가 시급했다.

○ ‘블록체인’ 시대 아이돌

‘………’의 주장을 더 들어봤다.

“아이돌도 동영상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후의 정보환경에 대응해야 합니다. 즉, IoT(사물인터넷) 시대나 게임 ‘포켓몬고’가 대변하는 증강현실의 시대를 선점하고 싶습니다.”

이들은 ‘하트싱크(HeartSync)’란 앱을 활용해 멤버의 심장박동을 팬과 공유한다. 블록체인을 이용해 비트코인에 멤버들의 메시지를 담아 영구 저장했다고 주장한다. 수면 유형 데이터를 3차원(3D)프린터로 출사한 작품을 지난해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신처럼 신비롭고 멀지만 늘 함께하는 존재로서의 아이돌을 첨단기술로 구현한다’는 철학이 함께 간다.

이쯤 되니 7의 대뇌피질에선 비상벨이 울렸다. 도쿄에 사는 일본문화평론가 이진석 씨를 맨 인 컬처 첨단 메신저시스템으로 연결했다.

“가상통화소녀, ……… 등에 대한 소식이 매일 뉴스로 보도됩니다. 일본 내 코인체크 유출 사태 때문에 가상통화소녀 멤버들 급여 정산에 지장이 우려된다는 기사도 나왔습니다. 화제가 되는 것만은 확실하죠.”

○ 일본 아이돌 업계에 도래한 ‘싱귤래리티(singularity)’

이쯤에서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을 만날 차례였다.

“하하하. 많이 놀라셨나봅니다. 일본은 아이돌 개념부터가 다릅니다. 일본엔 이른바 ‘지하 아이돌’이 창궐한 지 오랩니다. 일본 문화가 지닌 수용의 폭은 우리 상상을 초월하죠.”

지난해 8회를 맞은 ‘도쿄 아이돌 페스티벌’에는 223개 팀, 1480명의 멤버가 참여했다. 3일간 연인원 8만1378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평론가는 “일본 아이돌 업계에 싱귤래리티(특이점)가 왔다”고 분석한다. “일본 고교 한 반에 한 명은 아이돌이란 농담이 돕니다. 일본 10대 여성의 상당수는 자신의 직업을 아이돌이라 인식한다고 합니다. 시장 포화가 극단의 콘셉트 경쟁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주류 아이돌 음악계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미묘 편집장은 “일본에서 아이돌은 사회·문화적 컨테이너로 기능한다”고 했다. 노래 ‘사채카니발’을 부르면서 공연장에서 관객에게 돈을 걷는 아이돌 가수 오구마 아야메는 경악스럽다. 하지만 소위 지자체 아이돌의 면면도 있다. ‘일본 아이돌 연감 2016∼2017’에 따르면 마쓰야마(松山)시 농업 홍보를 위해 농부 차림으로 활동하는 ‘아이노바 가루즈’, 지역 분재사업을 알리려 머리에 분재 장식을 얹고 다니는 ‘본쿠라’, 규슈 지역 명소를 알리는 ‘린큐(러브 인 규슈)’가 활동하고 있다.

문화는 사회와 경제를 반영한다. 미묘가 말한다. “전파계 아이돌로 불리며 도쿄의 아키하바라에서 결성된 ‘덴파구미’는 망가진 ‘오타쿠’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합니다. ‘사회가 취급하듯 우린 쓰레기야. 하지만 힘을 내자고.’”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좀 더 긍정적이다. “앞으로 어쩌면 첨단 기술을 통해 일부 오타쿠의 취향에만 함몰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아이돌이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심연의 문턱에 다녀온 기분이 이럴까. 7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다음 회에 계속)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