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중구의 한 여인숙 건물 1층 객실 창문에 쇠창살이 설치돼 있다. 절도범의 침입을 막으려는 목적이지만 비상시 탈출을 막아 피해를 키울 수 있다. 정다은 기자 dec@donga.com
A여관도 1970년대 지어진 2층짜리 낡은 건물이었다. 서울장여관처럼 만약 새벽에 불이 나면 큰 인명피해가 우려됐다. 서울장여관 소식을 들었다는 A여관 주인은 “우리는 그런 이상한 손님 안 온다”고 말했다.
○ 곳곳에 자리한 ‘서울장여관’ 판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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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 12개가 있는 대학로의 여관은 객실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은 정문밖에 없었다. 비상구가 아예 없었다. 여관 주인은 “3층 옥상으로 대피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성인 남성 1명이 지나가기에도 비좁았다.
비상구가 갖춰지지 않은 쪽방 여관에서 스프링클러 등 소화 시설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여관 15곳 중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곳은 2곳에 불과했다. 서울 중구의 한 여인숙은 소화전이 없어 소화기를 10여 개 구입해 비치해 뒀다. 객실 수(18개)에 비해 부족했다. 이 여인숙 1층 객실 창문에는 쇠창살이 설치돼 있어 창으로도 대피할 수 없는 구조였다. 인근의 또 다른 여관 사장(76)은 “최근 불이 자주 나 나무를 다 들어내고 콘크리트로 바꿨는데도 여전히 겁이 난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의 한 여관 정문 앞은 전깃줄이 제멋대로 엉켜 있고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여관 안으로 들어가자 현관 앞에 빛이 바랜 소화기가 있었다. 제작연도 1994년. 소화기는 제조 뒤 10년이 지나면 성능점검을 받거나 교체해야 하지만 그런 기록은 보이지 않았다. 2층 소화기의 제작연도는 2005년이었다.
이들 여관은 불이 나도 소방차가 진입하기도 어려웠다. 여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폭이 2∼3m에 불과했다. 골목 중간 중간 전봇대가 설치돼 있어 소방 차량이 지나가기는 더 어려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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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창신동의 한 쪽방촌에서는 집 한 곳에서 불이 나 주민과 인근 모텔 투숙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사고 현장 바로 옆 건물에 부탄가스와 휴대용 가스버너가 다수 발견됐다. 주민 김모 씨(67)는 “방마다 가스버너가 하나씩은 있었을 텐데 불이 번져 부탄가스가 터졌다면 큰일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 소방법 사각지대에 놓인 쪽방촌
쪽방촌 건물 대부분은 수십 년 전 지어진 것이 많아 건축법이나 소방시설법(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지 않는다. 특히 쪽방 여관은 숙박시설이라 소방시설법 적용 대상이지만 2003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비상구를 갖춰야 할 의무가 없다. 불이 났을 경우 사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곳이라 맹목적으로 규제만 강화하기도 쉽지 않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기존 시설을 잘 관리하면서 관리자 교육을 철저히 하고, 중장기적으로 소방 관련법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투 트랙’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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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유모 씨(53·구속)는 이날 경찰에 2차 조사를 받았다. 유 씨는 “펑 소리에 놀라 도망가다 112 신고를 했다. 멍하다”고 진술했다. 정신병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권기범 kaki@donga.com·정다은·전채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