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영 경제부장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의 궁금증은 정권이 바뀌고서야 풀렸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3명을 ‘검증 대상’으로 청와대에 올렸다. 청와대는 2014년 11월 하순 신제윤 금융위원장에게 이순우 행장의 연임을 재가했고, 신 위원장은 이 행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청와대로부터 신 위원장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이순우 말고 이광구로 하세요.”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해하던 금융위 고위 당국자가 친분 있는 국가정보원 관계자에게 상황 파악을 부탁했다. 며칠 뒤 그의 입에서 나온 청와대 내 최고 실력자 중 한 명인 A 씨의 이름. “사업하는 친구의 민원 등 사적인 부탁을 이광구 부행장에게 몇 번 했는데 일처리에 흡족했답니다. A 씨가 뒤집었다는군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을 둘러싼 김 회장과 금융당국 간 정면충돌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번엔 또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드라마적 요소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협공으로 김 회장을 옥죈다. 두 사람은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이 추천했다. 그리고 세 사람과 끈끈한 고려대 인맥으로 얽혀 있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장 실장과 친분이 각별하다. 김 전 회장은 자신이 후계자로 선택한 김 회장과 등진 지 오래다. 김 전 회장이 장-최-최 라인과 결탁해 김 회장을 찍어 내리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당국에 맞서지 말라’는 금융계 금언(金言)에 맞선 김 회장의 행보는 더욱 궁금증을 키운다. “금융회사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는 청와대 경고가 나오고 금융당국은 한발 물러선다. 김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경남고 동기라는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지만 문 대통령의 성품을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떤 사연이 숨어 있든 이번 일이 한국 금융의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건 분명하다. 정권은 민간 금융회사 수장을 흔들고 현직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외이사들로 이사회를 구성한다. 사외이사들은 독립적인(Independent) 이사가 아니라 외부(Outside) 이사일 뿐이다. 금융당국이 제기한 ‘셀프 연임’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다.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면 낙하산을 내려보내기 어려워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하다. 지금처럼 은행을 ‘무주공산(無主空山)’으로 만들어 놓고 언제든 입맛에 맞는 인사를 ‘무혈입성(無血入城)’시키려는 의도와 다름없다. 은행 지배구조를 문제 삼는 정부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신치영 경제부장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