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극인 산업1부장
규제도 마찬가지다. 조금 오래된 통계지만 정부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공무원이 2만3185명 늘어나는 동안 등록규제도 4210건 늘었다고 한다. 공무원이 5.5명 늘 때마다 규제도 1건씩 늘어난 셈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성과가 없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자원도 없이 대외의존도가 90%에 육박하는 한국 경제는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적어도 남보다 두 배는 빨리 뛰어야 하는’ 거울나라 앨리스의 처지에 비유되곤 한다. 삼성전자가 ‘초 격차 전략’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한 것도 남보다 빨리 뛰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 경제는 갑자기 에너지를 소진한 채 길 위에서 헤매는 느낌이다. 규제를 양산하는 공공부문 비대화와 ‘공시족’ 열풍은 시들어가는 민간 활력의 한 단면이다.
비결은 사후 규제다. 현행법상 불법 여부가 모호한 신(新)산업에 처음부터 규제를 가하기보다 전략적으로 방치하거나 오히려 지원한다. 시장을 키운 뒤 문제점이 나타나면 사후 규제하면서 기업을 성장시키는 방식이다.
결과는 폭발적인 창업 붐이다. 작년 1∼9월 중국의 인구 1만 명당 신설 기업 수는 32개로 한국(15개)의 갑절 이상이다. CB인사이츠의 지난해 12월 발표에 따르면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전 세계 유니콘기업은 222개다. 이 중 절반이 넘는 112개가 미국 기업이었고 그 뒤를 중국이 59개로 빠른 속도로 쫓고 있다. 한국은 옐로모바일과 쿠팡 두 곳이 이름을 올렸지만 격차가 크다. 앞으로 국력을 좌우할 혁신창업 레이스 출발선에 한국은 주자가 1명 서 있다면, 중국은 50명쯤 서 있다고 비유한 최양희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몇 년 전 우려 그대로다.
중국은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이다. 2016년까지 300억 달러를 들여 1000개가 넘는 미국 초기 기술기업을 쓸어담았다. 해외 인재 유턴 정책도 중국 혁신창업을 꽃피우는 핵심 요인이다. 한마디로 민간 활력을 폭발시켜 국가 미래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갈수록 규제가 강화되는 한국은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일부 대기업을 겨냥한 획일적인 금산분리는 기업벤처캐피털(CVC)을 고사시키고 있다. 성공 대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창업 열정이 피어나기 어렵다. M&A를 통한 발 빠른 혁신기술 흡수로 글로벌 경쟁을 헤쳐 나가야 할 대기업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새해 한국이 다시 다른 곳에 가려면 발목에 묶인 모래주머니부터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