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조선 말기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투전하는 모양’. 투전은 끗수를 표시한 종이조각으로 하는 노름이다.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직업이라 부르긴 어렵지만,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하는 사기꾼은 전통 시대에도 있었다. 시장에서 가격을 속이고, 가짜를 진짜라고 속이고, 없는 죄를 만들거나 자신의 죄를 남에게 덮어씌우고, 투자금을 가로채는 사기 사건을 기록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광해군일기’에는 중앙정부 자산을 노린 사기 사건이 나온다. 당시 지방에서 거둬들인 세금이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유명인사를 사칭한 사기꾼이 가로채는 일이 상당히 빈번했다. 정조는 초계문신들에게 당대의 폐습을 말하며 “온 세상 사람들이 거간꾼이나 사기꾼의 구렁텅이에 빠져든 지 무려 몇 년이 되었는가?”라고 한탄하기도 한다.
‘청구야담(靑邱野談)’에 실린 ‘이절도궁도우가인(李節度窮途遇佳人)’에는 시골 무인(武人)의 재산을 한양 사기꾼이 가로챈 이야기가 있다. 사기꾼은 건장한 노비를 거느리고 좋은 말을 탄 무인을 우연히 보고 벼슬을 구하러 상경한 시골 무인임을 눈치 챘다. 사기꾼은 무인에게 접근해 병조판서의 사환을 사칭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무인은 의심하기는커녕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믿었다. 사기꾼은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나리 행중에 지니신 것이 얼마나 되시는지요?” 무인은 300냥이라고 알려줬다.
사기꾼은 공범 세 명을 끌어들였다. 한사람은 과부로 지내는 병조판서의 누님으로 위장했다. 병조판서가 매우 극진히 생각해 웬만한 부탁이라면 들어주는 누님이다. 두 번째는 병조판서가 신뢰하여 자문하는 동료, 세 번째는 애첩으로 위장시켰다. 사기꾼은 뇌물을 바쳐야 한다며 병조판서 누님 몫으로 100냥, 동료 50냥, 애첩 50냥을 뜯어냈다. 무인의 외모를 꾸미는 명목으로도 50냥을 뜯어냈다. 좋은 벼슬을 얻고 싶었던 무인은 감쪽같이 속았다.
전통시대에도 사기는 심리전이었다. 사기꾼은 상대가 뭘 원하는지, 뭘 두려워하는지 알아내고 귀신같이 이용했다. 이옥이 말했듯이 참으로 험악한 일이다.
강문종 제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