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크리스토프 케플링거 교수팀 개발 전압 걸어주면 인공근육 길이 늘어나… 같은 동작 100만번 해도 안 지쳐 작은 라즈베리 한 알 집어 옮기기도… 인간형 소프트로봇 개발 가까워져
최근 크리스토프 케플링거 미국 콜로라도볼더대 교수팀은 사람의 근육처럼 부드럽고 탄력 있게 수축·이완하면서도 사람보다 더 민첩하고 100만 번 이상 같은 동작을 반복해도 지치지 않는 소프트 인공근육(액추에이터)을 개발했다. 딱딱하고 무거운 피스톤이나 모터가 필요 없는 ‘인간형 소프트로봇’ 개발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는 평가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와 ‘사이언스 로보틱스’ 5일자로 2편의 논문에 걸쳐 공개됐다.
소프트로봇은 부드러운 생명체의 구조와 형태, 기능을 본떠 만들거나 고무처럼 유연하고 신축성 있는 소재로 만든 로봇이다. 가오리가 헤엄치듯 말랑말랑한 몸으로 물살을 가르는 ‘가오리 로봇’, 문어처럼 여러 개의 다리를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는 ‘문어 로봇’, 소금쟁이처럼 물 위에 앉을 수 있는 ‘소금쟁이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소프트로봇은 몸체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극한 환경에서도 딱딱한 로봇으로는 하기 어려웠던 복잡하고 정교한 동작을 할 수 있다.
미국 콜로라도볼더대 연구진이 개발한 사람 손 모양의 소프트로봇이 왼쪽 막대기에 꽂혀 있던 라즈베리 한 알을 오른쪽 막대기로 옮기고 있다. 사진 출처 사이언스
힘의 세기는 전압 세기로 조절한다. 전압을 세게 걸수록 인공근육은 더 변형되고 그만큼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 연구진은 길이가 15cm인 두 막대 사이에 판형 인공근육 1장을 고정시킨 뒤 250g짜리 추를 매달아 시험했다. 1만 V(볼트)를 가했을 때는 수축하는 힘에 의한 인공근육의 변형률이 5%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압을 2만5000V까지 높이자 변형률이 79%까지 늘면서 추를 더 힘껏 들어올릴 수 있었다. 이 인공근육 6장을 겹쳐 사용할 경우 4kg짜리 물통을 5cm 이상 들어올리는 것도 가능했다.
연구진은 위팔과 아래팔을 인공근육으로 연결한 로봇팔도 만들어 보였다. 전압 변화에 따라 팔 안쪽의 인공근육이 수축했다 이완하면서 야구공을 든 로봇팔이 접혔다 펴졌다. 전압을 걸었다 빼는 속도를 높이면 초당 5번 이상 빠르게 인공근육을 수축·이완시킬 수도 있다. 이 인공근육을 이용해 만든 사람 손 모양의 소프트로봇으로는 날계란을 깨뜨리지 않고 집어 들거나 손가락으로 작은 라즈베리 한 알을 집어 옮기는 것도 가능했다. 케플링거 교수는 “구동전압이 높다는 점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지만 이미 실험실에서 기존 대비 5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며 “인공근육은 평평한 도넛 모양으로도 구현 가능하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조규진 서울대 교수(인간중심 소프트로봇 기술연구센터장), 김정 KAIST 교수, 최혁렬 성균관대 교수, 박문정 포스텍 교수 등이 소프트로봇 관련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조 교수는 투명한 장갑처럼 생긴 소프트로봇 ‘엑소 글로브 폴리’를 개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손에 끼고 작동시키면 손 근육이 손상된 환자도 스스로 양치를 하거나 물건을 쥘 수 있다. 일반인도 힘을 들이지 않고 통조림을 따거나 1kg이 넘는 추를 거뜬히 들어올릴 수 있다. 2016년에는 세계 첫 소프트로봇 경진대회에서 바퀴를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는 다기능 소프트로봇 ‘스누맥스(SNUMAX)’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kyunge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