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희 전통공예 전문작가
그동안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선 종이 문화재를 복원할 때 일본의 전통 종이인 화지(和紙)를 사용해왔다. 이번 회의는 일본의 전통 종이보다 우리 전통 종이가 보존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알리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회의를 상징하는 포스터 역시 ‘신라의 달밤’을 모티브로 한 프랑스 작가의 작품이 담겨 있어 그 의미가 더욱 빛났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한국의 특정 지방자치단체들이 자기 지역의 한지가 다른 지역의 한지보다 더 우수한 것처럼 홍보하고 일부 언론을 통해 이런 내용이 알려진 것이다. 자치단체장들이 참석하지도 않았는데 루브르 박물관에 참석한 것처럼 보도가 되기도 했다. 이번 국제회의의 본래 취지나 현장 상황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루브르 박물관 관계자들은 매우 언짢아했다. 한지를 생산하는 한국의 지역들이 서로 다투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신뢰를 중시하는 유럽시장에서 한국의 한지가 통일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현장을 취재하고 기록한 필자로서는 루브르 박물관 관계자 앞에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유럽시장에서 일본 종이가 있던 자리를 우리의 한지로 대체하려면 전주와 문경, 의령과 원주 등 각 지방자치단체가 한지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아울러 한지산업에 대한 국가기관의 교통정리가 선행될 필요도 있다.
어쨌든 이번 회의의 성과는 좋았다. 그 덕분에 루브르 박물관 복원연구소는 내년 서울에서 동덕여대와 함께 한지 관련 포럼을 개최한다고 한다. 특정 자치단체의 한지를 넘어 우리 모두의 한지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서주희 전통공예 전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