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한국은 당시 네덜란드의 명장 히딩크 감독을 영입해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에 도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대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한국 축구였기에 국민들의 관심은 뜨겁지 않았다. 2001년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0-5,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0-5로 패해 히딩크 감독의 별명이 ‘오대영’으로 불리던 때였다. 2002년 1월부터 강도 높은 훈련에 들어가 평가전에서 핀란드와 코스타리카를 꺾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팬들의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월드컵 직전 열린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국이 안정환(2골)과 이천수, 윤정환이 골을 터뜨려 스코틀랜드를 4-1로 대파하자 팬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이어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1-1로 비겼고 프랑스와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2-3으로 졌다. 하지만 지네딘 지단, 티에리 앙리 등 세계적인 스타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달라진’ 태극전사들을 보고 국민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본선 1차전인 폴란드전부터 빨간 티셔츠를 입은 국민들은 거리거리에서 응원했다. 열기는 폴란드를 2-0으로 완파해 월드컵 사상 첫 승을 거두면서 기름을 부은 듯 타올랐다. 16강을 넘어 8강, 4강에 오르자 전국에는 수백만 명의 ‘붉은 악마’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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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겨울스포츠와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겨울올림픽 대부분의 종목은 눈이 많이 오고 겨울이 긴 북유럽 나라들이 즐기던 스포츠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겨울이 3개월 남짓한 한국에서 겨울스포츠는 ‘비인기 종목’이었다. 쇼트트랙 강국으로 군림하고 ‘피겨 여왕’ 김연아의 등장으로 반짝 인기를 누렸지만 한국은 여전히 겨울스포츠의 변방이다. 올림픽이 다가온다고 국민의 관심이 그냥 뜨거워지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분위기를 살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2년 축구가 보여줬듯 선수들이 직접 국민의 관심을 끌어올려야 한다. 스포츠는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나뉜다. 올림픽, 월드컵 같은 국가대항전에서 내셔널리즘이 작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민들은 이기거나 승리를 위해 투혼을 발휘하는 한국 선수에게 열광할 것이다.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는 ‘빙속 여제’ 이상화, ‘스켈레톤의 희망’ 윤성빈, 심석희 등 세계 최강 남녀 쇼트트랙 대표팀, 반란을 꿈꾸는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국민들을 뜨겁게 달굴 소재는 넘쳐난다. 평창 올림픽의 성공, 이제 태극전사들의 선전에 달려 있다.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