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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칼럼]중국 국빈방문 논쟁, 문제 있다

입력 | 2017-12-21 03:00:00

홀대냐, 환대냐 그리 중한가… 4대원칙 합의 잘했네, 못했네
결과 당장 알 수 없는 일을 두고 국론이 분열돼서야 되겠나
美中 패권경쟁 상황에서 한국은 외교 한계 인정하고 경제·IT정책으로 强國 만들라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할수록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접하는가에 더 큰 의미를 둔다. 마중을 어디까지 나오고 무슨 차를 내어 놓더라는 둥 말이 많아진다. 그게 곧 자신의 가치와 지위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가 간의 관계도 그렇다. 상대가 큰 나라일 때 우리는 이런 문제에 더 신경을 쓴다. 정상 간의 환담과 회담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심지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농담을 했는지 등 상대국 인사들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큰 관심거리가 된다.

하지만 잊어선 안 되는 일이 있다. 어느 국가든 국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국가 간의 관계는 냉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손짓 하나, 발짓 하나 이끌어 내는데도, 먼저 주든 나중에 주든 우리가 치러야 할 값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의전’이나 ‘스타일’에 관심이 높으면 상대는 이를 협상의 ‘카드’로 쓴다. 이를테면 정상 간의 환담시간을 얼마나 잡느냐에 신경을 쓰면 이를 짧게 잡았다가 조금씩 늘려주며 이쪽의 기를 죽인다. 그러면서 얻고 싶은 것을 얻어간다. ‘친구’라는 소리 한마디 듣는 것도, 골프 카트 같이 타는 것도 공짜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중국 국빈방문에서 ‘홀대’를 받았느냐 ‘환대’를 받았느냐, 너무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접 나온 인사의 직급이 좀 낮으면 어떻고 대통령 혼자 밥을 먹었으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어떤 대접을 받느냐가 아니다. 무엇을 내어 주고 무엇을 얻었느냐이다.

그런 맥락에서 눈을 돌려 다시 물어보자. 이번 방문에서 무엇을 얼마나 얻었나? 먼저 정부의 설명이다. 한반도 평화 4대 원칙과 사드 보복 철회를 확인했으며, 다양한 내용의 경제협력과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약속을 받았다고 한다. 또 양국 간의 신뢰와 우호적 정서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얻은 게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를 비판하는 쪽의 이야기는 다르다. 4대 원칙에는 대북한 제재에 대한 중국의 의지가 실리지 않았고, 사드 보복 철회는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으며, 평창 올림픽 건은 다음 개최국인 중국 스스로 그 흥행을 위해 나서는 일이라 한다. 또 ‘홀대론’에 따른 국민의 대중국 정서 악화로 양국 간의 우호 증진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지금 당장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4대 원칙만 해도 ‘전쟁 불가’와 ‘북한 비핵화’ 등 큰 방향에 대한 일반적 확인이다. 중국이 어떤 내용으로 그 속을 채우느냐에 따라 이쪽이 옳을 수도, 저쪽이 옳을 수도 있다.

그래서 또 하는 말이다. 이 문제 또한 나름의 평가는 하되 너무 심하게 따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야와 진보 보수가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싸우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안보와 경제 모두가 위중한 상황에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일을 두고 국론이 분열되어서야 되겠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먼저 대중국 외교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는 일이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겨루는 상황에서 중국은 우리에게 어쩔 수 없이 어려운 나라다. 정상 간에 밥 한두 번 더 먹는다고 해서, 또 외교적 수사 몇 마디 한다고 해서 그 입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결국 우리가 강해져야 하는데, 이 점과 관련해서는 산업정책과 과학기술정책 등 비(非)외교적 요소들이 매우 중요하다. 일례로 사드 보복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11월 말까지 반도체와 석유화학제품을 중심으로 올 한 해 대중국 수출이 13%나 늘어났다. 이처럼 싫건 좋건 우리를 찾을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더없이 중요한 국가다. 여당과 야당 모두 홀대다 환대다, 얻었다 못 얻었다 다툴 것이 아니라 외교와 비외교적 요소들을 연결하는 큰 그림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 또한 이 부분에 관심을 가져 주어야 한다.

정부도 그렇다. 대접 잘 받고 많이 얻어 왔다고만 말할 때가 아니다. 한계가 분명한 외교인데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었겠나. 그렇게 말할 때마다 오히려 스스로의 외교적 수완을 과신하고 있지 않을까 불안하고, 그런 가운데 비외교적 수단에 관심이 줄어들까 걱정도 된다. 오히려 외교적 수단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는 건 어떨까.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